여야 ‘票퓰리즘’ 공약 쏟아내는데… 재원 따져볼 검증시스템은 구멍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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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4·13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공약을 쏟아내며 표심을 유혹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공약 검증 시스템이 없어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에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국회 등 어디에서도 공약을 이행하는 데 예산이 얼마나 필요하고 국민들이 세금을 얼마나 더 내야 하는지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는 공직선거법 저촉을 우려해 공약 분석을 포기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도입을 추진했던 ‘선거공약 사전검증제’는 사실상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 모두가 손놓은 공약 검증


정치권 공약 실현에 재정이 얼마나 투입될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분석하는 기관은 국내에 전무(全無)하다. 재정당국인 기재부는 2012년 공약 검증에 나섰다가 홍역을 치른 뒤로 공약 분석을 포기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기재부가 ‘복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복지 공약 이행에 5년간 최소 268조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선관위가 ‘공직선거법 위반’ 경고조치를 내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선관위가 추진했던 공약 검증은 내부에서조차 ‘잊혀진 정책’이 됐다. 2012년 12월 선관위는 독립기구를 만들어 공약 소요 예산, 재원 조달 방안 등을 검증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진전된 것은 없다. 선관위 측은 “공약에 들어갈 예산을 분석하는 것 자체가 선거 개입이 될 수 있다”며 “(공약 검증은) 선거법이 개정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모두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여야는 이번에도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각종 복지 및 국책사업 공약을 발표했다. 새누리당은 △고교 무상교육 단계적 실시 △임신·출산·육아 지원 ‘마더센터’ 설립 등을 내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병 월급 30만 원까지 인상 △기초연금 2018년까지 30만 원으로 상향 등을, 국민의당은 △육아휴직 대체근로자 비용 정부 지원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공약 소요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새누리당은 예산 자연 증가분을 활용하겠다며 재원 마련 대책을 사실상 내놓지 않았다. 더민주당, 국민의당은 세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추상적 약속만 했다.

○ 독립기구 통한 공약 검증 시스템 마련해야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이미 공약 검증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2년 내놓은 ‘재정투명성 지침’을 통해 “선거 2주 전까지 공약에 들어가는 재정 소요 내용을 정확히 공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실제로 호주는 정부가 직접 총선 기간 중에 공약에 들어가는 예산 정보를 담은 ‘공약 소요 예산’ 보고서를 발표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네덜란드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경제정책분석국(CPB)이 선거 전후로 각 당의 공약이 재정 및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 발표한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공약 검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적어도 내년 대통령 선거 때는 검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선관위에 여야 합의로 독립기구를 설치하거나 예산정책처 등 국회 내 기관을 활용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상훈 january@donga.com·신민기 기자
#포퓰리즘#공약#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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