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징글징글한 ‘미루기 공화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5일 00시 00분


여야가 24일 쟁점 법안의 처리를 또 미뤘다. 여야 지도부는 이달에만 7차례나 만났다. 하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의 법안 연내 통과는 물 건너갔다. 여야는 24일까지는 법안을 처리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어야 했다. 법사위에서 요구하는 5일간의 법안 숙려기간을 계산할 때 31일까지 본회의 통과가 불가능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한다면 연내 통과도 가능하다. 그러나 정 의장은 여야 합의 없는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에는 단연코 ‘노’다. 새해에도 쟁점 법안을 둘러싼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봐야 하나. 한마디로 징글징글하다.

쟁점 법안이 뭔가.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 노동개혁 5개,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기업활력제고특별법 등 경제활성화 2개,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 모두 9개 법안이다. 이 가운데 서비스산업발전법은 2012년 7월 20일 발의됐다. 국회에 머문 지 3년 반 가깝다. 게다가 테러방지법은 16대, 북한인권법은 17대 국회 때 처음 발의됐다. 노동개혁 법안은 노사정이 합의해 9월 국회로 넘겼으나 야당이 한사코 가로막고 있다.

선거구 획정안의 연내 통과도 사실상 힘들게 됐다. 여야가 협상을 재개하는 27일 합의가 이뤄져도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안을 만드는 물리적 시간이 빠듯한 실정이다. 더구나 여당은 노동개혁 법안을 제쳐 놓고 획정안만 합의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래저래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내년 초부터 전체 선거구가 무효화되는 초유의 ‘입법 비상사태’가 닥칠 것 같다.

청와대는 연내 쟁점 법안 통과가 안 되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를 통해 정 의장의 직권상정을 밀어붙일 태세다. 청와대는 국정의 근간인 인사를 얼마나 자주 미뤄왔던가. 지금도 공석인 공공기관장 자리가 수두룩하다. 내 할 일은 미루면서 다른 사람만 재촉하면 누가 승복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도 큰소리칠 형편은 못 된다.

작가 정을병이 1974년 발표한 단편 ‘육조지’에 ‘미뤄 조지기’라는 표현이 나온다. 공권력이나 공무원이 할 일을 미루는 것처럼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일은 없다. 이 소설이 나온 지 40년이 넘은 작금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미뤄 조지기’ 공화국이다.
#선거구#여야#청와대#정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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