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亂世)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그렇다. 현 집권 여당의 성도(聖都) 격인 대구에서 들려오는 ‘진실한 사람’ 소란은 이제 듣기 거북하다. 국민에게 표 달라고 해야 할 사람들이 왜 대통령과의 관계에 이렇게 목숨을 거는지…. 누구 말대로 정말 국민을 ‘ㅂㅅ’으로 아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이른바 ‘양초(兩初·두 명의 초선의원)’가 이끄는 야권도 가관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난파선처럼 보이고 안철수 신당의 앞길은 시계 제로 상태다. 2월 개봉박두를 선언했지만 볼거리가 있기는 할까 모르겠다.
내년 4월에 선거를 치른다고 하는데 지역구는 몇 개가 될지, 내 소중한 한 표는 어디에 나오는 누구한테 행사해야 할지도 도통 알 수가 없다. 예비후보들도 15일부터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31일까지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마저도 원인 무효가 된다. 연말까지 남은 시한은 일주일 남짓이지만 빛나는 ‘금배지’를 달고 있는 분들은 느긋해 보이기만 한다.
국회의 대표자인 정의화 의장이 떠올랐다.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2년 임시직’ 자리인 만큼 욕심을 버리겠다고 했지만 요즘 받는 스트레스 지수는 상당해 보인다. ‘친정’인 여당의 집요한 쟁점 법안 직권상정 요구에 발끈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정도니 단단히 마음이 상하긴 상했나 보다. 홀로 국회 체력단련장을 찾아 땀을 한 바구니 쏟았다고 한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곤란한 일만 터지면 괴롭힌다는 정 의장 푸념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대한민국 공식 의전서열 2위이지만 그가 쏘는 ‘레이저’를 맞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의사정리권, 질서유지권 및 사무감독권이 있다지만 여야 합의가 없으면 의사일정조차 못 잡으니 여야 원내대표단에는 ‘을 중의 을’로 보일 수도 있겠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말 의장의 공관 초대에 1년 넘게 묵묵부답이다. 핫라인이 가동되는 경우도 박 대통령이 원하는 경우 간헐적으로 이뤄지는 모양이다.
국회선진화법 통과 당시 이 법에 반대했던 정 의장은 여전히 ‘야당 결재법’이 원망스러울 것 같다. 세월호 특별법 파동 속에 지난해 5월 2일부터 9월 말까지 무려 151일간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한 것이 19대 국회 후반기다. 2012년 당시 선진화법 통과에 찬성했던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친박계의 ‘직권상정’ 요구에 역정이 날 만도 하다.
아무튼 현재 여의도 상황을 설명하는 데 정치적 반신불수 상태라는 표현보다 더 적합한 게 어디 있을까. 2011년 8월 펴낸 자서전 ‘이름값 정치’에서 직접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
정 의장은 ‘국민의장’이란 말을 들으면 표정이 흐뭇해지곤 한다. 제헌둥이(1948년생)인 정 의장이 밝혔던 국회의장 취임 당시 포부를 다시 찾아봤다.
1. 헌정 67년에 걸맞은 품격 높은 국회가 될 수 있도록 대립과 갈등 대신 대화와 타협의 박수소리가 들리는 ‘화합의 전당’,
2.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회적 갈등을 녹여내는 ‘소통의 전당’,
3. 국민을 위해 365일 일하는 진정한 ‘민의의 전당’을 만들겠다.
국회의 현실과 어쩌면 이리도 정반대인지….
‘살리는 일’을 제일 잘한다는 정 의장이 24일을 마지노선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른바 최종 담판이라고 명명했지만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극적인 타협의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제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단언컨대 양쪽에서 다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길은 현재로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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