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 16일. 당시 세 살이던 둘째 딸은 집을 나서는 아버지 구상연 씨(98)에게 주문을 외듯 같은 인사를 세 번 반복했다. 황해도 장연군에 살던 구 씨는 광산에 가기 위해 월장항에 모이라는 지시에 따라 집을 나섰다가 딸과 헤어졌다.
“아버지, 딸 둘 놓고 가셨어. 내가 송자고, 얘가 선옥이야.” 24일 금강산에 당시 6세, 3세였던 두 딸 송자 씨(71)와 선옥 씨(68)는 할머니가 되어 65년 만에 나타났다.
구 씨는 당시 작은 형에게 고추를 팔아 딸에게 신발을 사다 주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곤 평생 “또 와”라고 말하던 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구 씨는 상봉 대상자가 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시장으로 달려가 꽃신을 샀다. 금강산까지 그 꽃신을 꼭 품고 왔다. 구 씨와 동행한 아들 형서 씨(43)는 “개별상봉에서 두 누나에게 꽃신을 전했지만, 누나들은 연신 (주변을 의식하고) 조심스러워하며 신어 보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방북한 우리 이산가족 가운데 최고령자는 이석주 씨(99)였다. 1950년 인민군에 끌려가던 도중 포격전이 벌어진 뒤 홀로 한국으로 내려왔다. 북한의 아들 동욱 씨(70)와 손자 용진 씨(41)에게 전한 선물 보따리에는 본인의 영정을 담았다. 고령인 이 씨는 “이동욱이 맞나”며 “갓난아이였는데…. 너무 늙었어. 고생을 많이 했어”라며 아들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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