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주체 불분명해 ‘빠져나갈 구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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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대치에서 대화로/성과와 한계]
‘북측은 지뢰폭발로 南군인 부상 당한 것에 유감 표명’ 문구 논란
황병서 “南, 근거없는 사건 만들어” 北 돌아가자마자 조작 주장 되풀이
유감표명 주어로 北 명시는 성과

“북한이 남북 합의문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도발에 대해 주어를 분명하게 밝혀 유감을 표명한 것은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이 처음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25일 공동보도문 2항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2항은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돼 있다.

북한은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태와 관련한 유감 표명 당시 북한이라는 주체를 명시했다. 하지만 외무성 성명이었던 탓에 유감 표명이 국제사회를 향한 것인지 남측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 불분명했다. 이 당국자는 “이를 북한이 수용한 것은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로 봤을 때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목함지뢰 도발의 경우 북한이 소행 자체를 완강히 부인해왔다. 이 때문에 북한이 유감 표명을 통해 도발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북한의 분명한 사과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의중에 둔 사과도 실은 유감 표명이었다. 북한이 자신의 도발과 관련한 입장 표명 전례로 볼 때 유감이라는 표현은 사과의 뜻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 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공동보도문만 보면 유감 표명의 주체는 명확하지만 지뢰 도발의 주체는 불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북한으로서는 주민들에게 “한국군에 일어난 지뢰 폭발 사고에 위로의 뜻을 건넨 것”이라고 둘러대며 자신들의 협상 성과로 선전할 여지도 충분한 것.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25일 북한에 돌아가 “남조선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가지고” 운운한 것도 표현의 모호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시인과 사과를 받아낸 것은 성과이지만 우리 측의 ‘완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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