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정치 끝내야/청와대·친박]소수파 역할 찾아야 하는 친박
靑에 민심 전하는 윤활유 될수도
“이기고도 진 것 아니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8일 사퇴하자 친박(친박근혜)계가 지난 2주간 보여준 모습을 보면서 당내에서 나오는 얘기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에 대해 ‘불신임’을 선언한 뒤 친박계는 그를 축출하는 선봉대 역할을 자임했다. 결과적으로 친박계의 ‘친위 쿠데타’는 성공했지만 역설적으로 친박계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다.
친박계는 지난해 국회의장, 서울시장 후보 선출과 전당대회, 올 2월 원내대표 선출에서 4연패했다. 박 대통령을 만든 주류에서 어느새 비주류 소수파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요란했지만 지난달 25일 1차 의원총회에서 사실상 유 원내대표 재신임이 결정되면서 스타일을 구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당황한 친박계는 뒤늦게 유 원내대표를 향한 흠집 내기와 이전투구를 방불케 하는 편 가르기 행태를 보이면서 이번 사태를 일파만파 키운 측면이 있다. 이 과정에서 당 지도부 붕괴설, 대통령 탈당설 등 험악한 시나리오까지 친박계에서 양산됐다. 당내에서 비박(비박근혜)계에 밀리자 내년 4월 총선 지분을 염두에 둔 권력투쟁에 매몰된 듯한 인상마저 남겼다.
현 정부 출범 초 최소 110명이 넘었던 친박계 의원 수는 최근 20∼30명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당하게 ‘나는 친박’이라고 외치는 의원은 눈에 띌 정도다. 이와 관련해 3선의 한선교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한 10여 명만이 ‘우리만이 진짜 친박’이라고 하는 배타심이 지금의 오그라든 친박을 만들었다”며 “박을 위한 친박이 아닌 오직 나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친박이 지금의 소수 친박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친박계를 두고 ‘박심(朴心·박 대통령의 뜻) 바라기’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박 대통령 주변에서만 배회했을 뿐 동료 의원들과 소통하고 외연을 넓히는 노력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친박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내 소수파라는 역학구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이상 막무가내 식으로 정치 현안들을 몰아붙여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뜻을 집행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밑바닥 현장의 여론을 적극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민심의 파수꾼’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친박계는 청와대의 돌격대에서 벗어나 ‘포스트 박근혜’를 대비해야 한다”며 “자기 나름의 논리와 가치 등을 통해 자체 역량을 개발하면서 생존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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