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이 할일” “외국사례 없어”… 규제개혁 팔짱 낀 부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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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토론 동영상 지적 6건중 5건, 민관추진단에 부정적 의견 밝혀

‘부작용이 우려된다, 외국 사례가 없다, 민간이 할 일이다, 교통문화 수준이 낮다, 이미 일부 시행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주재한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국민들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한 6건의 규제 중 5건에 대해 정부부처들이 토론회 직전인 3월 중순에 이런 갖가지 이유를 대며 ‘개혁이 어렵다’는 의견을 국무총리실 산하 민관합동 규제개선추진단에 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토론회가 끝난 뒤 일부 부처는 부랴부랴 ‘긍정 검토’ 쪽으로 선회했지만 되도록 일을 벌이지 않으려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어떻게 규제개혁의 발목을 잡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토론회 때 기업인들의 희망사항을 담아 방영된 동영상에서 J&J컴퍼니 이진희 대표는 “영화 ‘몬스터’ 포스터를 만들며 주인공 목에 상처자국을 그렸다가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아 급하게 지운 적이 있다”며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토론회를 앞두고 ‘영화 관련 심사는 민간인 단체인 영상물등급위원회 담당’이라며 책임을 넘겼기 때문이었다. 문체부는 나이 제한 없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포스터에 대해 일률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같은 동영상에 출연한 남은주 킹콘텐츠 대표는 “인턴 고용이 가능한 중소기업 기준이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돼 있는데 5인 미만 회사도 인턴을 뽑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영세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고용을 늘릴 수 있는 제안이지만 고용노동부는 “영세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고용이 잘 유지되지 않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이 청년인턴을 고용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이 인턴사업에 덜 참여할 것’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펴기도 했다. 다만 방하남 노동부 장관이 토론회에서 “벤처, 지식사업 같은 경우는 작은 기업이라도 청년들이 일을 배울 수 있으므로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언급한 만큼 일부 업종에 대한 규제 완화 가능성은 있다.

신종 수질개선 처리기계를 만드는 워터웨이 김완주 부장은 당시 “과거에는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만으로 상수도사업소에 수처리 기계를 납품할 수 있었지만 2010년 5월부터 국가표준(KS) 인증을 추가로 받도록 해 납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담당부처인 환경부는 ‘업계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표준을 인정하는 방안과 관련해 외국 사례가 없다’며 팔짱을 끼고 있다가 지난 주말 재검토에 나섰다.

책임질 일이 생길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관계 부처가 약속이나 한 듯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만 올림픽대로 같은 간선도로에서 오토바이 운행을 금지하고 있어 이를 풀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이에 대해 경찰청과 국토교통부는 규제 완화에 따른 장단점을 검증하지 않은 채 “오토바이 운행 관련 문화 수준이 낮다”며 반대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박재명 기자
#규제개혁#끝장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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