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꼽은 최악 규제는 마트 영업시간 제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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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학회, 의원입법 통한 ‘낙제점 규제’ 10가지 선정

대통령선거 열기가 뜨겁던 2012년 11월 이용섭 당시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지방대생들의 취업난을 해소하겠다며 정부, 공공기관, 민간 기업에 지방대생 취업 비율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5급 사무관을 선발할 때 지방대생을 20% 이상 뽑고 △공공기관은 신규 채용 시 30% 이상, 청년인턴 채용 시에는 50% 이상 뽑아야 하며 △근로자가 300인 이상인 대기업은 3% 이상 뽑아야 한다.

취지는 좋지만 내용이 비현실적이어서 ‘전형적인 대선용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이 법안은 구체적 수치가 빠진 채 정부에서 대기업의 지역인재 채용비율을 공개할 수 있다는 내용만 남아 작년 12월 말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규제 전문가들은 통과된 법에 대해서도 “채용과 인력 계획은 기업 자율의 영역이므로 국가가 개입할 필요성이 현저히 낮다”며 100점 만점에 25.93점을 줬다. 수우미양가로 치면 ‘가’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19대 국회에서 만든 규제 상당수가 필요성이 크지 않거나 무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규제학회는 25일 ‘의원입법 규제 입안과 영향에 대한 모니터링’ 보고서를 내고 전문가들이 19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만들어진 규제에 점수를 매긴 결과를 공개했다.

○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확대 ‘최하점’

규제학회는 올해 1월 1일까지 의원발의로 19대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전수조사한 뒤 전문가와 경제단체 등의 검토를 통해 문제의 소지가 있는 규제 75건을 평가 대상으로 정했다. 이후 평가단을 꾸려 △필요하고 정당성이 있는가 △편익이 비용보다 큰가 △규제의 수단이 적절한가 등 세 가지를 기준으로 규제의 질을 평가해 점수를 매겼다.

가장 점수가 낮았던 것은 대형마트와 준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 제한을 ‘0시∼오전 8시까지’에서 ‘0시∼오전 10시까지’로 연장하는 규제였다. 작년 1월 의결돼 4월부터 시행 중인 이 규제는 100점 만점에 22.82점을 받았다. 평가단은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에 대한 극심한 제한을 가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도 쇼핑 시장의 상당한 축소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두 번째로 낮은 점수(23.14점)를 받은 규제는 중소기업에 사회적 책임 의무를 부과하고 정부가 실태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평가단은 “지역사회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기업에 강제할 부분이 아니며 정부의 실태조사가 사실상 규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 △공공기관 여성기업 제품 구매 의무화(23.64점) △쇼핑센터 및 복합쇼핑몰 내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23.89점)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 부여(23.89점) 등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 정치적 이유로 제안, 공청회도 안 거쳐

낮은 점수를 받은 규제 중에는 모든 사회적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는 ‘규제 만능주의’가 배경이 된 규제가 적지 않았다.

민주당 주승용 의원은 작년 10월 전문성을 높이겠다며 공인중개사가 개업을 할 때 실무수습교육을 받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선의로 낸 법안이지만 평가단은 “규제 도입으로 기존 업체의 이익만을 보장할 가능성이 높기에 규제의 정당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구직자의 고충을 덜겠다며 채용 과정에서 구직자가 기업에 제출한 서류를 의무적으로 반환하도록 하는 법도 작년 말 생겼다. 규제학회는 “채용 과정은 기업과 구직자 간의 사적 자치의 영역이며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도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규제 법안들이지만 공청회를 거친 경우는 많지 않았다. 평가단은 “가장 점수가 낮은 10개 법안 중 6개는 공청회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 측과 전문위원들이 “깊이 있는 심사가 필요하다”거나 “법의 기본적인 취지와 다르다”고 반론을 펴도 수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형마트를 세울 때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 논의되던 2012년 11월 윤상직 당시 지식경제부 1차관은 법안소위에서 “유통산업발전법이 아니라 유통산업규제법으로 가는 게 차라리 낫겠다. 법 취지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고 있다”고 반대했지만 오히려 한 의원으로부터 “귀에 거슬린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장원재 peacechaos@donga.com·박진우 기자
#규제#마트 영업시간 제한#규제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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