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통상임금 지침, 되레 노사갈등 불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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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시점 재직자만 받는 상여금, 통상임금 해당안돼” 가이드라인
노동계 “대법 판결 뒤집기” 반발… 5월 임단협때 소송 폭증 우려

정부가 통상임금 산정과 관련해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정부가 대법원 판결 취지를 뒤집어 임금 인상폭이 예상보다 줄어들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서 향후 노사관계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와 노동계는 대부분의 기업이 임금협상을 시작하는 5월 이후 관련 소송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통상임금 노사 지도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지난해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관련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후속 조치로, 앞으로 이어질 노사협상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게 된다.

지침에 따르면 정기상여금도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는지에 따라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달라진다. 정기상여금이 지급되기 전 퇴직한 근로자에게 근무일 또는 근무월에 비례해 상여금을 지급한다면 통상임금에 해당하고, 지급하지 않는다면 고정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서는 명절 귀향비, 휴가비 등의 복리후생비가 특정 시점에 근무하는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임금이므로 통상임금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정기상여금 역시 특정 시점에 재직자에게만 지급된다면 같은 법리가 적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과거 통상임금 산정이 잘못돼 못 받은 수당 등의 임금을 청구하는 것을 불허하면서 내린 ‘신의 성실의 원칙’에 대해서도 고용부는 올해 임금협상 전까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기업이 판결 이후에 새 임금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법원 판결 취지 역시 임금협상이 새로 타결되기 전까지 이 원칙이 유지된다고 보는 게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지난해 판결을 내릴 때 ‘이 판결 이후 합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만큼 노동계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소송에 나설 경우 또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등 당분간 혼란이 이어질 개연성도 크다.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하는 모양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을 통해 “새 지침은 대법원 판결 취지를 뒤집는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이 퇴직자에게는 정기상여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고용부 지침대로라면 임금 인상 폭이 미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7∼12월 관련 소송이 46건이나 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한국GM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낸 후 7년간 160건이 제기됐던 것과 비교하면 세 배 이상으로 많다.
▼ 노조 제기 통상임금 소송… 작년말 이미 206건 달해 ▼

지난해 말 기준 각급 법원에 계류된 통상임금 관련 소송 건수도 206건에 이른다.

통상임금 소송 건수가 늘어난 것은 노동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직적으로 통상임금 문제를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2012년 3월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자 노동계가 이를 근거로 통상임금 소송 제기를 장려한 것.

특히 현재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기업들은 올해 임금협상을 앞두고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A사는 소송에서 질 경우 약 325억 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A사 대표는 “대법원 판결 이후 노조와 소송 대신 대화로 풀기 위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노조가 임금협상이 시작된 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하면 바로 소송에 집중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올해는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맞물려 노조의 요구를 정치 쟁점화하려는 노동계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며 “임금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소송을 통해 해결하려는 모습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종=유성열 ryu@donga.com / 박창규 기자
#통상임금#노사갈등#정기상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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