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전복세력 금배지 달고 버젓이 활개치는 대한민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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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사태’ 부끄러운 자화상

현직 국회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국가정보원의 수사를 받는 것은 2013년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체제 전복을 꿈꾸는 인사들이 국회의원으로 뽑힌 것도, 정체가 탄로 난 뒤에도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모두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 사회는 적(敵)에게 권력과 세비까지 쥐여줄 정도로 사리분별이 안 됐고, 왜곡된 역사인식의 혼재 속에 스스로를 방치했다. 경제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다지만 사회 안보 시스템은 예전에 비해 허술하고 취약해졌다.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 사회 스스로의 책임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주사파, 진보로 둔갑해 제도권 침투

이번 내란음모 사건의 우두머리로 알려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51)은 2003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으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대표 주사파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의원은 ‘미 제국주의를 축출한 뒤 현 정부 타도, 민족자주정권 수립,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투쟁 목표로 활동한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이었다.

음지에 있던 주사파가 햇볕과 자양분을 받은 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다. 법무부에 따르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10년간 공안사범 3538명을 사면했다. 이 시기 대공 수사는 크게 위축됐다. 안보의식이 느슨해지면서 종북세력 상당수가 진보세력으로 둔갑했고, 사상 전향도 하지 않은 주사파들이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 제도권으로 스며들었다.

이번 내란음모 사건을 주도한 경기동부연합의 뿌리인 민족해방(NL) 계열도 2001년 민주노동당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했다. 배후에서 움직였던 이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두 차례 사면과 복권을 받은 뒤 지난해 4·11총선을 계기로 전면에 나섰다. 당시 사면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문재인 현 민주당 의원이 총괄했다.

손잡거나 방치한 정치권은 책임회피

총선에서의 야권연대는 적화세력에 금배지까지 달아줬다. 민주당 한명숙 대표는 협상 타결 뒤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적 포괄적 야권연대를 성사시켰다”며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되돌려 놓을 첫걸음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통진당은 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이라는 최대 성과를 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체제 전복 세력과도 손잡았던 민주당은 여전히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30일 “당시 통진당 인사들의 종북 성향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이번에 문제가 된 회합도 총선 직후에 있었기 때문에 전후 관계를 뒤집어서 민주당의 책임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억지”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총선 전 통진당과의 협상에 앞서 내부 보고용으로 만든 문건에는 ‘경기동부연합’의 실체에 대한 분석이 담겨 있었다는 언론보도까지 있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인문교양학부)는 “민주당은 야권연대를 통해 통진당의 과격, 종북 이미지를 희석시켜준 책임이 있는 만큼 국민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며 “눈앞의 결과를 위해 일시적으로 뭉쳤다가 문제가 생겼다면 책임도 같이 지는 것이 공당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또 “민주당이 야권연대를 ‘절대 선’으로 여기는 한 체제 전복 세력이 우리 사회를 위협할 가능성이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에 빨갱이는 없다”고 말했던 무소속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도 “안일한 안보관에 대해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적 질서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정부와 여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야가 3월 22일 공동 발의한 이석기 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안은 5개월 이상 방치되고 있다. 그런데도 집권 새누리당은 지금껏 야당 눈치만 보고 있다. 안건 처리는커녕 회의도 한 번 열지 않았다. 민주적 질서를 훼손하려는 정당을 해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해지고 있다. 헌법 8조 4항에 따라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통진당의 해산심판을 제소할 수 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수수방관해 왔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의원직을 이용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기밀을 취득하고 있는 만큼 여야는 서둘러 두 의원을 제명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가 종북의 위험성과 안보의 위기에 대해 자각하고 성찰할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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