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무한반복 정책지시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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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때마다 “보육시설 비리 근절… 맞춤형 일자리 창출…”
관료조직 근본 변화위해 강조 또 강조

“투자라는 소중한 아이가 있다. 모든 정성을 다 기울였지만 아이가 건강해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5월 14일 국무회의)

“(병든) 아이가 낫지 않고 잘 자라지 못했는데, ‘우리가 정성을 다했다’고 노력한 것 갖고 자랑하겠느냐.”(5월 20일 수석비서관회의)

박근혜 대통령의 ‘무한 리플레이(재생) 지시’의 한 대목이다. △복지 분야 등 민간과의 협업 강화 △청년, 여성, 노년층 등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창출 △유치원과 보육시설의 비리 근절 △안전사고 예방대책 △정보공개 활성화를 포함한 정부 3.0 실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재조정 등은 박 대통령의 단골 지시 사항이다. 지시 내용도 매번 대동소이하다.

같은 얘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다 보니 박 대통령의 웬만한 지시 사항은 청와대 내에서 거의 암기 수준이다.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강조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만 해도 3월 11일 국무회의 때부터 두 달 넘게 반복해온 지시다.

‘무한반복 지시’에는 무엇보다 국정철학과 목표를 관료조직의 말단까지 전파하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 더욱이 부처 간 칸막이가 높고 민간과의 협업에 익숙지 않은 데다 갑(甲)의 마인드가 강한 관료조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박 대통령의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다.

무한 리플레이 지시에도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도 묻어난다. 박 대통령은 20일 “현장에서 (문제를) 풀어주지 않고 자꾸 정책만 얘기하면 안 된다. 국민이 체감하게 달라붙어야 한다”며 ‘성과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다음 달 4일이면 취임 100일을 맞음에도 새 정부 출범 이후 이렇다 할 정책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질책인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깨알 지시’가 달라진 국정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의 지시에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민간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올코트 프레싱’ 스타일로 국정을 끌고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정책 체감도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진정성에만 너무 의존해 전략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 대통령 스스로 가장 경계하는 공급자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14일 국무회의에서 공개적으로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북한에 회담을 제의하라”고 지시한 대목이다. 개성공단 문제가 정치적으로 꼬여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관점으로만 접근한 데다 당시 통일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지시를 받고 곧바로 회담 제의를 함으로써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동정민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정책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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