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책행보는 중기중앙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및 소상공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축하박수를 받고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서병문 중기중앙회 수석부회장, 박 당선인,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배조웅 중기중앙회 부회장. 국회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재계와의 연쇄 회동에 나서면서 처음 찾아간 곳은 대기업 총수들로 구성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아닌 중소기업중앙회와 소상공인단체연합회였다.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살리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나타낸 것이다. 꼭 5년 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당시 이명박 당선인이 전경련 회장단과 먼저 회동한 뒤 6일이 지나서야 중기중앙회를 찾은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 중소기업·소상공인 살리기에 방점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나가겠습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오전 10시경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 들어서면서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당선인이 격의 없는 대화로 중소기업인들의 어려움을 청취하는 데 애쓰면서 간담회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그는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고, 그래서 제일 먼저 왔다”며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박 당선인이 이날 중소기업을 힘들게 만드는 불공정, 불합리, 불균형 등 ‘3불(不)’을 깨끗하게 해소하겠다고 거듭 천명함에 따라 친(親)대기업 정책으로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대폭 수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당선인의 중소기업 정책은 단순한 지원 수준을 넘어 경제민주화 공약의 핵심인 ‘공정경쟁의 틀 마련’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공정한 경쟁 속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한 단계 성장하고 중견기업이 다시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기회의 사다리’를 구축해 장기적인 경제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당선인은 대기업의 △부당한 납품 단가 인하 △중소기업 기술 탈취 △중소기업 영역 무분별한 침해 △불공정 거래 등을 철저하게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당선인은 특히 비공개 간담회에서 대기업이 하도급 업체의 기술을 탈취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가져갔을 때 처벌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관련해 “배상액을 10배까지 확대하는 등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엄격하게 지켜 나가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구체적 범위와 관련해 기술 탈취나 부당 단가 인하 시에는 10배, 비정규직 차별 시에는 3배의 배상액을 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회장단이 유통산업발전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자 “빨리 하시길 바라는데 야당과 합의가 안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한 기업인이 야당과 합의를 했다고 하자 “합의 본 그대로 통과시키면 된다”며 조속한 처리를 약속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영업시간에 대한 이견으로 여야가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한 상태다. 소상공인단체 연합회 임원단과의 간담회에선 배석한 진영 정책위의장에게 “유통법이 꼭 통과될 수 있도록 애를 써 달라”고 당부했다.
전경련 찾아 “대기업도 변해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그룹 총수들을 만나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박 당선인, 허창수 전경련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국회사진기자단○ 朴 “대기업, 구조조정 자제해야”
선거 기간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박 당선인과 전경련과의 만남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간담회에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회장단 17명이 참석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해외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허 회장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은 과감히 극복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정당한 기업 활동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운을 뗀 뒤 대기업의 변화를 강하게 촉구했다. 그는 특히 “경영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라든가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 분담에 나서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근로자들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에서 노력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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