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대선]<4> 강영숙 소설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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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는 희망이 필요해

영화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을 본 뒤 삼청동을 걷는다. 라틴계의 밥 딜런이라고 불리는 로드리게스라는 한 잊힌 가수의 삶을 따라간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의 노래가 인종차별 문제가 극심했던 남아공에서 인기가 있었다거나, 나중에 그가 기적처럼 부활했기 때문에, 삶이란 아무리 힘이 들어도 한 번 참고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이 영화는 그 흔한 성공담 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광화문 교차로에 서서 대통령선거를 앞둔 도시를 바라본다. 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소통을 이루지 못한 채 사회 발전 모델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늘 표 얻기에만 급급한 낡은 정치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늘 이 도시는 이번 총선이, 이번 대선이 뭔가를 새롭게 해줄 것이라 속삭인다.

잊힌 가수 로드리게스는 경제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는 냉장고를 지고 나르거나 온종일 철거 가옥의 쓰레기를 치우기도 한다. 화려했던 시절을 되찾겠다고 난리 법석을 떨지도 않고, 내 음반 판매 수입을 누가 다 가져갔느냐고 떠들지도 않으며,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그냥 자기 자리를 지킨다.

광화문에 내걸린 대형 뉴스 전광판으로 대선 여론조사의 숫자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이 도시의 시민들도 로드리게스처럼 묵묵히 살아간다. 폭설이 내리는 디트로이트의 거리를, 좀비처럼, 유령처럼 걷고 있는 로드리게스처럼 나도, 시민들도 한밤의 광화문 교차로를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삶이다. 정치도 그냥 정치가 아니라 삶의 정치여야 하고, 정치는 이 도시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가능성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각종 장밋빛 언어와 낡은 약속 따위는 이제부터 그만. 행복, 사랑, 희망, 미래, 화합, 정의 따위의 말들. 이참에 ‘정치인 장밋빛 언어사용 금지법’이라도 제정해야 할까.

묵묵히 살아가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잘 들어봐 주길 바란다. 지금부터 “크리스마스 2주 전에 난 직장을 잃었어”로 시작되는 전직 가수,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세 딸을 키운 현직 건설노동자 로드리게스의 옛날 노래나 들으면서, 이 도시에 변화를 가져올, 그리고 삶을 이어가게 해줄, 희망의 메시지를 찾고 기다리는 조용한 시간만 있을 뿐. 로드리게스처럼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 도시에는 희망이 필요하다.
#대선#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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