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 D-21]여론조사 조작 파문 이정희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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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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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경선때 ‘나이 속여 답하라’… 보좌관이 진보당원들에 문자
李 “원한다면 재경선 하자” vs 민주 김희철 “후보 사퇴하라”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왼쪽)가 서울 관악을의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 당시 보좌진의 여론조사 개입 의혹이 드러난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잘못을 시인하면서 “재경선을 요구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을의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에게 패한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오른쪽)이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자료를 꺼내 보이며 여론조사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왼쪽)가 서울 관악을의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 당시 보좌진의 여론조사 개입 의혹이 드러난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잘못을 시인하면서 “재경선을 요구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을의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에게 패한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오른쪽)이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자료를 꺼내 보이며 여론조사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사진)가 17, 18일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과의 서울 관악을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여론조사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경선에서 이긴 것으로 발표된 이 대표는 20일 의혹의 일부를 시인하면서 “김 의원이 원한다면 재경선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김 의원은 재경선을 거부하고 이 대표의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4·11총선을 앞두고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던 야권연대의 신뢰도와 파괴력에 큰 흠집이 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17, 18일 여론조사 방식으로 전국 74개 선거구에서 경선을 실시했다. 다른 야권연대 지역에서도 여론조사 조작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20일 복수의 웹사이트에는 이 대표의 보좌관인 조모 씨와 선거캠프 관계자인 박모 씨가 여론조사 경선이 진행되던 17일 관악을의 통합진보당 당원들에게 ‘나이를 속여 여론조사에 답하라’는 취지로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사진이 잇따라 게재됐다. 이번 여론조사는 시간대별로 특정 연령대를 정해 응답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 씨는 17일 오전 11시 12분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짐. 다른 나이대로 답변해야 함”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오전 11시 35분에는 “ARS 60대와 함께 40∼50대도 모두 종료. 이후 그 나이대로 답하면 날아감”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11시 1분에는 “40대 이상은 완전히 종료됐지만, 현재 20∼30대 응답자가 부족한 상황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 “60대로 답하면 버려지니 20대로” 독려… 野단일화 신뢰 흠집 ▼

박 씨도 같은 날 오전 11시 36분 “40∼50대로 답하면 버려집니다!! 남은 대상자는 20대뿐입니다. 앞으로 ARS 받으시는 분들은 20대로 답하셔야 합니다!!”라며 나이를 속여 답할 것을 요청했다. 이날 여론조사의 진행 상황은 해당 후보들에겐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실시돼 이처럼 시간대별 상황을 후보 캠프가 아는 것은 정상적 상황이라면 불가능하다는 게 김 의원 측 주장이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사진들이 인터넷에 퍼지며 파문이 확산되자 이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혹의 일부를 시인했다.

이 대표는 “선거 캠프 상근자들이 17일 당원들에게 여론조사에 적극 응할 것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낸 것은 맞다”며 “조 씨와 박 씨는 각각 독려 문자를 13회, 9회 보냈는데 이 중 (나이를 속이라고 해) 문제가 된 문자는 각각 3회(수신자 105명), 1회(수신자 142명)”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론조사 응답 시 20, 30대 나이로 응답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은 사실”이라며 “김 의원이 원한다면 재경선하겠다”고 말했다. 조 씨 등이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편법으로 여론조사 상황을 건네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선 “당원들을 통해 파악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주로 집에서 여론조사 전화를 받는 입장인 당원들이 시간대별 진행상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참모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가 진행되던 17일 오전 11시 이후에 보낸 문자메시지 3건. 야구 동호회 사이트 ‘MLB PARK’ 화면 캡처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참모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가 진행되던 17일 오전 11시 이후에 보낸 문자메시지 3건. 야구 동호회 사이트 ‘MLB PARK’ 화면 캡처
정치권에선 이번 논란으로 야권연대에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이 대표가 총선 후보직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캠프 차원에서 계획한 게 아니고 우리 지역구에서만 진행된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스타급 정치인으로 ‘좌파의 박근혜’로 불리는 이 대표의 ‘상품성’이 크게 훼손돼 향후 정치행보에 큰 부담이 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야권연대를 발판으로 원내교섭단체(20석) 구성을 노렸던 통합진보당의 총선 전략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어느 정당보다 도덕적 우월성을 자랑으로 내세워온 통합진보당으로선 사태 진행에 따라서 타격 정도가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충격적인 사건이다. 통합진보당과 여론조사기관 등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도 “이명박 정권 심판과 총선 승리를 위한 야권연대는 유효하다”고 말했다.

경선관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열고 ‘21, 22일 관악을에서 재경선을 실시할 것’을 김 의원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재경선을 수용할 수 없다. 이 대표 측이 불법을 저지른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일을 풀어야 한다”며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경선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며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지만 부정 여론조사 논란으로 상황이 급변하자 “거취는 당과 조금 더 상의하겠다”고 밝힌 뒤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경선관리위의 ‘재경선 권고’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만큼 김 의원이 거부하면 이 대표와 김 의원이 제각각 출마할 수도 있다. 야권연대의 상징적 지역에서 야권연대가 파기되는 것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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