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통일재원 마련 방안을 확정했다. 남북협력기금에 ‘통일계정’을 신설하고 이를 정부와 민간 출연금으로 채워가기로 했다. 하지만 야당이 내년 예산에 편성된 남북협력기금 출연금 3000억 원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
중국을 방문한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23일 베이징(北京) 케리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남북협력기금 내에 ‘통일항아리(통일계정)’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세 신설을 거론하면서 시작된 통일재원 마련 구상이 1년 3개월 만에 구체화됐다.
통일계정의 재원은 남북협력기금 불용액과 민간 출연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매년 약 1조 원이 남북협력기금으로 배정되고 있지만 남북 관계 경색으로 대부분 사용되지 않고 있다. 올해에도 1조153억 원의 남북협력기금 지출 계획이 잡혀 있으나 10월 현재 실제 집행액은 281억 원으로 집행률이 2.9%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민간을 상대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정부 예산 중 불용액도 통일비용으로 쌓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통일부는 기부자들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모금 활성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재원 마련 방안으로 거론됐던 통일세는 경제 상황과 조세저항 등을 고려해 일단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정부 개정안은 ‘다른 법률에서 정한 전입금이나 출연금’도 통일계정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해 세금 부과의 근거를 마련했다. 류 장관은 “훗날 달라질 경제형편 등을 고려해 세금 부과 가능성을 열어놓기는 하겠지만 세금 부과를 지금 바로 시행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이 내년 남북협력기금 중 정부출연금으로 배정된 3000억 원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국회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반드시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통일계정의 총 규모를 잠정적으로 55조9000억 원으로 잡았다. 이는 통일부가 실시한 ‘남북공동체 기반조성사업’ 연구용역에 따른 수치로 2030년 통일이 된다는 가정 아래 통일 직후 1년 동안 소요될 것으로 추산한 최소 통일비용이다.
류 장관은 “통일세대의 통일비용 부담을 나눠 지자는 의미로 통일계정을 시작했다”며 “통일을 향한 국민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고 북한 주민에게 희망을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급변사태 대비용으로 통일비용을 준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통일 시점을) 20년 뒤로 가정한 것은 점진적 평화통일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베이징=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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