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리비아” 3색 깃발 흔들며 밤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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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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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특파원 ‘해방선포식’ 현장을 가다

23일 리비아 벵가지 키시광장에서 과도국가위원회의 무스타파 압둘잘릴 위원장(왼쪽)이 한 반카다피군 병사가 반납한 권총을 들어 보이고 있다. 벵가지=AP 연합뉴스
23일 리비아 벵가지 키시광장에서 과도국가위원회의 무스타파 압둘잘릴 위원장(왼쪽)이 한 반카다피군 병사가 반납한 권총을 들어 보이고 있다. 벵가지=AP 연합뉴스
“오늘은 리비아인 모두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리비아 과도정부를 대표하는 과도국가위원회(NTC)가 ‘40년 독재에서의 해방과 새로운 리비아의 출발’을 선포한 23일 수도 트리폴리는 흥분과 들뜸,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했다.

시내 중심의 순교자광장은 해방 선포식이 열리기 2시간 전인 오후 3시경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노점상들은 과도정부의 국기와 모자, 스카프, 배지 등을 팔았다. 선포식이 시작되는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광장으로 향하는 중심가의 오마르 알모르타르 대로는 왕복 4차로 전체가 승용차로 가득 차 거대한 주차장이 됐다. 트리폴리에서 가장 번화한 대로 중 하나인 이 거리는 다행히 내전 기간에 전투가 심하게 벌어지지 않아 상가 대부분이 파손되지 않았다. 이날은 상가의 90% 이상이 문을 열었다. 여성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옷가게와 화장품점이었다.

광장 바로 옆의 노점상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파로 가득 찼다. 카다피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래픽 처리한 사진들이 1디나르(0.7달러)에 팔리고 있었다. 금은방과 가방 가게가 집중돼 있는 광장 다른 한쪽의 무실거리 재래시장도 대목을 만났다. 한 보석상 주인은 “그냥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오늘은 그래도 행복한 날”이라며 웃었다. 광장 곳곳에서 카메라와 수첩을 든 동양기자를 본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는 반갑다거나 고맙다고 말했다. 광장 한쪽 편에서는 NTC가 낙타 두 마리를 도축한 뒤 요리해 이슬람의 전통적 호의 표시로 시민에게 나눠줬다.

축하 행사의 막이 오르자 광장에 모인 10만 인파는 대형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두 살짜리 딸을 안은 여성 사르만 씨(42)는 광장 맨 앞에서 사회자의 구호에 맞춰 “리비아” “알라”를 연신 외쳤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대형 연단 앞을 지키던 50여 명의 과도정부군 병사들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시민들과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같은 시간 반군의 수도였던 벵가지의 키시광장도 축제의 도가니였다. NTC를 대표해 압델 하피즈 고가 부위원장이 “머리를 높이 쳐들어라. 여러분은 자유 리비아인이다”라고 외치자 수만 명의 군중은 “리비아”를 연호하며 일제히 삼색 깃발을 흔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카다피군과의 전투에서 숨진 가족과 친구의 사진을 높이 흔드는 군중도 있었다. 무스타파 압둘잘릴 NTC 위원장은 “새 리비아는 이슬람 국가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토대로 입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사들이 카다피가 하수구에 숨었다가 붙잡히고 혼란한 상황에서 살해된 사실을 빗대어 “그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넘겨질 것”이라고 조롱하자 여성들은 감격에 북받친 듯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트리폴리와 벵가지를 포함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열린 축하행사는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고 수백 발의 축포 소리도 새벽까지 계속됐다.

“우리가 이겼다”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가 해방을 공식 선포한 23일 내전의 최대 격전지였던 미스라타의 여성들이 삼색기를 손에 들고 거리로 나와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 이들은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42년 압제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했다. 미스라타=AFP 연합뉴스
“우리가 이겼다”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가 해방을 공식 선포한 23일 내전의 최대 격전지였던 미스라타의 여성들이 삼색기를 손에 들고 거리로 나와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 이들은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42년 압제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했다. 미스라타=AFP 연합뉴스
하지만 기쁨으로 가득 찬 축제 분위기가 새 정부 출범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차기 권력을 향한 경쟁이 NTC 내부에서 이미 시작됐다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500여 개 부족으로 분화된 리비아 내 분파 간 이권다툼까지 벌어질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카다피가 생포된 뒤 사살된 것이나 카다피의 장례 절차가 연기되고 있는 것도 NTC 내 세력 간 갈등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전투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과도정부군 병사들이 카다피의 둘째 아들 사이프 이슬람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바니왈리드 남부 지역을 포위하고 있다고 과도정부군 지휘관이 23일 발표했다. 이슬람은 20일 수르트에서 도망쳐 이곳으로 숨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8개월 가까이 이어져 온 내전이 남긴 처참한 파괴도 리비아의 미래에 짙은 어두움을 드리우고 있다. 22일 기자가 방문했던 미스라타가 대표적이다. 리비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미스라타는 온통 폐허뿐이었다. 시내 중심가에 제대로 된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3층 이상의 건물들은 모두 불타거나 부셔졌다. 3시간 넘게 차로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문을 연 곳은 자동차 정비소와 문방구, 가구점이 전부였다.

이종훈 특파원
이종훈 특파원
미스라타에서 트리폴리로 돌아오는 동안 크고 작은 검문소 17곳을 통과했다. 검문소마다 쌓여있는 대형 컨테이너 안에는 병사들이 가득했다. 한 검문소 옆에서는 불과 7∼8세밖에 안 돼 보이는 어린이들이 소총을 들고 숲 쪽을 향해 실탄을 쏘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병사 누구도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얼마를 달리다 보니 10∼20대 초반의 젊은이 수십 명이 빗자루와 수레 등을 끌고 부서진 도로 중앙분리대의 돌을 치우고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흡사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린 직후 젊은이들이 스스로 나서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우던 모습과 같았다. 그들이 리비아의 미래이고 희망이었다.

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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