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보선 D-2]41년 교직 교육장-표창 받은 감사원 출신이 ‘뒷거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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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군수 재선거 출마자 ‘경쟁주자 매수’ 무슨 일이

“교육지표를 ‘사람됨을 추구하는 창의적 인재 육성’으로 정하고 인성과 창의성 함양에 역점을 둔 교육 청사진을 펼치겠다.”

2007년 3월 2일 당시 조동환 전북 순창교육청 교육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1969년 교사로 임용된 조 전 교육장은 교장, 교육청 학무과장, 남원교육장과 순창교육장을 지내고 지난해 8월 명예퇴직을 할 때까지 41년간 교직에 몸담은 교육자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사람됨’과 ‘인성’을 강조했던 그는 퇴직 1년 만에 순창군수 출마를 포기한 뒤 무소속 이홍기 후보를 만나 선거를 돕는 대가로 인사권과 돈을 요구하는 과정이 동아일보가 입수한 녹취록으로 생생히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본보 22일자 A1·8면 참조
A1·8면 순창군수 재선거 출마자 ‘경쟁주자 매수’ 현장 녹취록 입수


이 후보도 공무원의 비리를 감시하는 감사원의 부감사관을 지내고 감사원장 표창까지 받은 모범 공무원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교육장과 감사원 공무원을 지낸 두 사람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10월 3일 오후 8시, 순창군 선관위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한 남자는 전화를 받은 지도계장에게 “제보할 것이 있다. 증거를 갖고 나오겠다”고 말했다. 이 한 통의 전화는 10·26 순창군수 재선거를 앞둔 지역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지도계장은 그날 순창군 모처에서 제보자 A 씨를 만났고 조 전 교육장과 이 후보의 대화 녹취 음성파일이 담긴 USB를 확인했다.

다음 날인 4일 전북 선관위 전체가 긴박하게 움직였다. 4일 오후 3시 40분 순창군 선관위 지도계장과 특별기동단속반 팀장이 A 씨를 전북 남원시의 한 콘도에서 만나 정식으로 조사했다. 오후 7시 반 이 후보를 선관위 회의실로, 조 전 교육장을 조사실로 각각 불렀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칠 수 없도록 각별히 주의했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로 부른 것은 서로 입을 맞추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 전 교육장은 처음엔 관련된 내용을 추궁하자 답변을 회피했지만 음성파일을 들려주며 “이게 당신 목소리가 맞느냐”고 하자, “맞다”고 시인했다. “대화 상대가 이 후보가 맞느냐”는 질문에도 “맞다”고 답변했다. “이 후보가 인사권한의 3분의 1을 주기로 한 것이 맞느냐”는 물음에도 “(이 후보가) 약속했다”고 답했다. “대가를 받고 도와주기로 약속한 것은 맞지만 약속한 대로 돈을 받은 것은 한 푼도 없다”고 항변했으나 녹취된 내용에 대해선 사실을 시인한 것.

조사관이 “선거비용 보전 가운데 5개 중에 2개를 준다고 했는데 2개가 얼마냐”고 묻자, 그는 “2000만 원이다”라고 답했다. 선관위는 ‘2개’가 ‘2억 원’이라고 의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교육장에 대한 조사는 오후 10시까지 2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같은 시간 시작된 이 후보의 조사는 10여 분 만에 끝났다. 이 후보는 조사관이 대략의 조사 취지를 설명하자 조사받는 것을 거부하고 자리를 떴다. 순창군 선관위는 다음 날 이 후보에게 3차례 전화를 걸어 “나와서 항변이라도 하라”고 했지만 이 후보는 “6일 나가서 밝히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선관위는 5일 곧바로 검찰에 고발했다. 선관위의 조사를 받겠다던 이 후보는 6일 누군가가 도청을 했다며 선관위 조사 내용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전주지검 남원지청은 7일 제보자 A 씨와 조 전 교육장, 12일 이 후보를 조사한 뒤 19일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20일 이 후보와 조 전 교육장은 구속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 후보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후보 측은 “8월 20일 두 사람이 만나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은 맞지만 결국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 측이 공개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이 후보는 조 전 교육장과 만난 지 닷새 후인 8월 25일 다시 전화를 걸어 “그쪽에서 제시하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담이 되고 겁이 나서…. 순수하게 좀 도와주세요”라며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교육장은 해당 시군 교육행정기관의 최고책임자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조 전 교육장은 8월 20일 이 후보와 만난 자리에서 평생 교육에 몸 바친 교육자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발언들을 이어갔다.

그는 이 후보를 돕는 대가로 인사권의 3분의 1 행사 권한과 선거비용 보전을 따내자 이를 확인하는 문서 작성까지 요구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녹취록에 따르면 조 전 교육장은 유력한 다른 후보도 만나 의사를 타진한 사실을 말하며 이 후보에게 “거래 흥정이겠죠. 상대 후보를 못 도우란 법도 없어요”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선거비용을 ‘두 개(2000만 원)’라고 표현하고 “내가 그런 것을 요구한 것, 이것이 정치다. 내가 배운 것이 그것밖에 안 배웠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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