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묘지서 쫓겨난 ‘이승만 아들’… 51년만의 사죄 무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0일 03시 00분


4·19 단체 “진정성 없어 거부”… 이인수 씨 “유감이지만 이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19일 오전 4·19혁명 51돌을 맞아 행사 준비가 한창인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 쩌렁쩌렁한 외침이 울렸다. 노란색 소형 버스 한 대가 묘역 입구에 들어서자 70대 노인 30여 명이 버스를 몸으로 막았다. 이들은 “살인자가 죽인 사람 제삿날에 왜 왔느냐”며 버스를 발로 차고 거칠게 항의했다. 거센 항의에 10m가량 후진하던 버스는 뒤에서 들어오던 다른 차량과 충돌할 뻔하기도 했다.

이날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 회원들. 함께 온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 박사(80)는 어렵게 버스에서 내렸지만 이들에게 밀려 묘역 밖으로 쫓겨났다.

이날 4·19혁명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사죄를 하기 위해 묘역을 찾은 이 박사와 기념사업회 회원들은 도착한 지 채 10분도 안 돼 쫓겨났다. 4·19민주혁명회(혁명회)와 4·19혁명희생자유족회(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공로자회) 등 3개 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새벽부터 “(기념사업회 사람들이)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할 것”이라며 별렀다. 이 단체들은 기념사업회가 밝힌 사죄 의사 표시에 대해 ‘진정성 없는 사과를 거부한다’는 성명을 18일 발표한 바 있다. 혁명회 회원 이영구 씨(72)는 “남의 제사에 허락도 없이 51년 만에 언론을 통해 오겠다고 한 다음 성명서를 발표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3개 단체 회원들에게 떠밀려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채 묘역을 빠져나간 이 박사는 “지금이야말로 서로 화합할 수 있을 때라고 생각했다”며 “더 늦기 전에 사죄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4·19 민주묘역 참배와 헌화를 무력으로 제지당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그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 이승만 동상 “광화문에” “안된다” 해묵은 갈등도 원인 ▼

그는 과거 이 전 대통령이 살았던 서울 종로구 이화동 이화장으로 장소를 옮겨 사과 성명을 낭독한 후 “51년 만에 내린 결정을 4·19 관련 단체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4·19 단체들의 이날 반발에는 사죄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 외에 이 전 대통령 동상 건립 문제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사업회는 2009년부터 이 전 대통령 동상을 서울 광화문에 건립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여 약 50만 명이 참여했다.

4·19 단체들은 이번 사죄 행위를 동상 건립 분위기 조성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고 있다. 강기태 전 공로자회 감사(75)는 “이승만 정권이 학생들에게 총을 쏴 수많은 사람이 죽은 곳이 바로 서울 광화문”이라며 “그곳에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우기 위해 사죄 운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긴태 전 혁명회 사무총장(72)은 “당시 홍안이던 청년이 칠순이 넘었을 때 찾아온 이유가 단순히 동상 건립 때문이라면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며 “수많은 청년이 죽어간 광화문에 이 전 대통령 동상을 설치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4·19 당시 학생들은 서울 남산과 탑골공원에 설치된 이 전 대통령 동상을 끌어내렸다. 반면 김일주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건국 선포 장소가 광화문인 만큼 건국 대통령인 이 전 대통령 동상을 반드시 현재 광화문과 세종대왕상 사이에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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