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채권법 파장]‘정교분리’ 거스른 하야발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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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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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못하는 靑-與

#장면1

2001년 9월 17일.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참모들과 함께 워싱턴의 이슬람 사원을 찾는다. 3000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낸 9·11테러 발생 엿새 후였다. 그는 “이슬람은 평화다. 테러리스트들은 평화 대신 전쟁을 원한다”며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와 이슬람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9·11테러로 미국 내 이슬람교도에 대한 증오 범죄가 급증하는 것을 막기 위한 행보였다.

#장면2


2011년 2월 말.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임 회장 취임 감사예배(24일)에서 “이슬람채권법의 입법화를 계속 추진한다면 이명박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한나라당은 냉가슴만 앓을 뿐 직접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한기총 연합 예배 27일 오후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새에덴교회에서는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수적 개신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일 기독의원연맹 연합예배가 열렸다. 이 행사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지만 이슬람채권법이 사실상 폐기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용인=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기총 연합 예배 27일 오후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새에덴교회에서는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수적 개신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일 기독의원연맹 연합예배가 열렸다. 이 행사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지만 이슬람채권법이 사실상 폐기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용인=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중동 오일머니를 활용하기 위한 정부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슬람채권법·일명 수쿠크 법안)에 대한 개신교계의 반대 수위가 위험할 정도로 높아졌지만 여권은 개신교 눈치만 보는 양상이다. 이슬람채권법 찬성 인사들에 대한 낙선운동 시사에 이어 대통령 하야 발언까지 공공연히 할 정도로 종교가 정부의 입법활동을 제지하는 것은 정교분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학계 원로인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은 “정부의 정책 결정에 대해 낙선운동, 대통령 하야 운운하며 반대하는 것은 지나친 종교 활동으로 헌법상의 정교분리 원칙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27일 현재까지 아무런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25일 브리핑에서 조 목사 발언에 대한 기자들의 물음에 “별다른 논의를 한 게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게 전부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김무성 원내대표가 2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2월 국회 처리 유보 의사를 밝힌 이후 입을 꽉 다물고 있다. 대통령 하야 운동 발언이 본보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에도 마찬가지다. 한 고위 당직자는 ‘이슬람채권법을 나중에 처리할 것이냐’는 물음에도 “2월에 못하니까 3월에 하겠다는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난감한 속내를 내비쳤다.

여권의 침묵에는 물론 개신교 표심에 대한 걱정이 깔려 있다. 한 재선 의원은 “가뜩이나 불교와 천주교로부터 당이 ‘왕따’를 당하고 있는데 개신교 표심까지 흔들리면 이 정권이 급속히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권 내부에도 분열상이 드러난다. 친이(친이명박) 직계로 개신교 신자인 한 의원은 “개신교에서는 이슬람채권법 통과 여부를 절체절명의 문제로 보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공산주의 유물론과 이슬람교가 대표적인 ‘적(敵)그리스도’다. 그런데 장로인 대통령이 이런 인식을 못했다는 데 대해 대통령의 ‘영적 분별력’에 큰 회의를 갖고 있다”고 교계 분위기를 전했다.

한나라당은 26일 개신교 측에 “이슬람채권법을 처리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했으나 개신교 측은 “그게 사실이라면 당의 이름으로 언론에 발표하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의원은 “한편으론 이슬람채권법을 접으면 이 정권이 결국 개신교 정권이라는 말만 들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와대 참모들조차 ‘장로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이런 여권의 태도에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국회 관계자는 “헌법상의 정교분리 원칙을 거스르는 명백한 ‘위헌 발언’에도 국정 운영 측에서 일언반구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눈치를 보는 상황은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허 이사장은 “정책 결정을 해놓고도 (특정 종교의 반대 때문에) 주춤하는 모습은 우리 정치 수준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얘기다”라고 비판했다.

조 목사는 27일 설교에선 ‘하야 발언’은 지나친 표현이었음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청와대 측의 유감 표시가 조 목사 측에 전달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슬람채권법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밝힐지에 개신교계는 물론이고 정관가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정교분리(政敎分離) ::


국가 권력이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종교는 정치에 원칙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정교분리 개념은 강력한 교권을 기반으로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면서 혼란을 겪은 서양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형성됐다. 그 후 토머스 제퍼슨 미국 대통령이 1802년 정교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으며 미국 헌법에 이 원칙이 반영된 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헌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 헌법에 명시된 정교 분리 원칙 ::


헌법 제20조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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