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늘 궁금했던 ‘남한 마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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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0일 14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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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내용으로 2월 11일 방송분입니다.
남한 독자들이 아닌 북한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임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전에 북에서 살 때 가까운 지인 중에 한 명이 무역선 선원이었습니다. 그분이 어쩌다 우리 집에 와서 외국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어린 나이였지만 신기한 그 이야기들에 마음이 쏙 빼앗겼습니다.

그분이 한번은 외국 상점에 갔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이 매장을 마음대로 다니면서 물건을 다 만져보고 고르고 나올 때만 돈을 계산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훔쳐가지 않나요?”하고 저도 모르게 되물었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북조선 전국적으로 운영하는 상점이 몇 개 되지도 않지만, 한 20년 전에 상점들이 문을 열었을 때도 상점가면 온통 진열품만 있었지 살 수 있는 물건은 몇 개 되지 않았거든요.

그것도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만져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매대 넘어 물건을 눈으로 확인하고 판매원에게 “저것 좀 주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상점이란 당연히 그런 것인 줄 알고 있던 제가 감시도 없고 나올 때만 값을 계산하는 그런 상점에선 사람들이 물건을 다 훔쳐갈 텐데 하는 걱정이 제일 먼저 든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훗날 고난의 행군이 닥치고 장마당이 번창해서야 드디어 저도 넓은 장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마음대로 상품을 고를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록 장사꾼이 잔뜩 경계하며 눈을 딱 부릅뜨고 있는 앞에서 고르는 것이긴 해도 말입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드디어 어릴 적 말로만 듣고 머리 속에 참 많이 상상해 보았던 그런 상점에서 물건을 사게 됐습니다.

막상 처음에 들어가 보니 그렇게 오랫동안 상상만 하던 상점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막 신기하고 놀랍고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마치 아주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저는 물건을 골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통제하고 감시하는 사람이 없으니 처음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유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기 한국에선 상점이란 말은 쓰긴 쓰지만 그렇게 많이 잘 쓰진 않습니다.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오라”라고 하면 아주 귀에 이상하게 들립니다.

아시다시피 남쪽은 외래어를 워낙 많이 쓰다 보니 상점을 슈퍼나 마트라고 합니다. 슈퍼란 것이 영어로 시장을 의미하는 슈퍼마켓을 줄인 말이고 마트는 영어로 할인점을 의미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습관 돼서 슈퍼와 마트란 말이 자연스럽지만 저는 지금도 종종 상점이란 말이 튀어나옵니다. 사실 상점이란 단어가 더 좋아 보이는데 말입니다.

여기는 슈퍼와 마트 말고 백화점도 있습니다. 백화점은 한자로 따지면 북이나 남이나 똑같이 백가지 물건을 파는 상점이라는 뜻이지만 실질적인 의미는 좀 다릅니다.

북에선 백화점 하면 물건이 많은 상점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지만 여기서 백화점 하면 고급스러운 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건이 많기는 마트나 백화점이나 비슷한데 상품이 백가지는 커녕 아마 수십만 가지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백화점이 마트보다 좋고 비싼 물건들을 팝니다.

지금은 저도 물건 살 때 백화점은 비싸서 잘 안가고 일반적으로 마트에 가는데 워낙 한꺼번에 많이 사다보니 하나하나 골라낸 상품을 마트 안에서 밀차에 싣고 다닙니다.

식품 매대만 예를 들면 거기 가면 각종 먹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북의 상점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간장, 된장도 여기는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간장도 양조간장, 진간장, 초간장 하는 식으로 종류가 다양하고 같은 종류라도 회사마다 맛이 또 다릅니다. 그중에서 어느 것이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자주 먹어본 것을 하나 선택합니다.

당과류 매대에 가도 수백 가지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비싸서 못사는 것은 절대 아닌데 다만 안 먹어본 것을 골랐다가 입맛에 맞지 않아 버릴까봐 안전하게 그냥 먹어본 것을 고릅니다.

그러니 제가 먹어보지 못한 당과류도 수백 가지가 넘을 것입니다. 옷 매대에 가면 각종 옷이 쫙 걸려있고, 전자제품 매대에 가면 텔레비와 컴퓨터 세탁기 이런 것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돈은 물건 다 사고 나갈 때 계산대에서 신용카드로 한꺼번에 계산합니다. 지키는 사람도 없는데 왜 훔쳐가지 않지 하는 어릴 적 궁금증도 이제는 풀리는 듯도 합니다.

마트에서 마음먹고 물건을 훔치려면 아마 열에 아홉은 성공합니다. 그런데 실패하는 한번이 문제인 것이죠. 아무리 많이 훔쳐봐야 몸에 숨겨서 나오면 얼마나 나오겠습니까.

하지만 일단 잡히면 사회적으로 정말 크게 망신하고 처벌도 받고 하는 겁니다. 그런 위험부담을 지느니 차라리 나가서 며칠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사는 것이 훨씬 더 많이 삽니다.

그리고 사회의 물질적 풍요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풍요로운 곳에는 여유가 있습니다.

자꾸 상점에 가다보면 어떤 때는 물건 한두 개를 점원이 빠뜨리고 계산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이라면 “앗싸, 공짜가 생겼다” 이러겠지만 서울에서 저는 “이거 계산되지 않았는데요”하고 자발적으로 말하고 돈을 더 냅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는 속담도 있듯이 이런 것을 보면서 저는 결국은 잘 살아야 도덕이니 양심이니 체면이니 따지게 된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여우와 승냥이만 살아남았다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하는 북조선에도 집집마다 쌀독이 가득 차는 날이 하루 빨리 와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버렸던 양심과 도덕을 되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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