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요직 당조직지도 1부부장에 최룡해 기용”

동아일보 입력 2010-09-25 03:00수정 2010-09-25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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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인사권 가진 권력부서 “김정은 최측근 부상 가능성”
최룡해
최룡해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61·사진)가 28일 열릴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핵심 요직인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기용될 것이라고 대북 단파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이 24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북한 내 고위급 통신원’을 인용해 “김정은(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이 후계자로 등장하는 시점에 최룡해가 당 조직지도부의 제1부부장에 발탁된다는 것은 그가 앞으로 김정은의 최측근이 된다는 의미”라며 “최룡해는 김 위원장과 독대해 직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측근 중 한 명이고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오른팔로도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노동당의 조직지도부는 당 간부는 물론이고 군과 내각, 사회단체 등의 간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최고 권력부서다. 최룡해는 ‘빨치산 1세대’ 최현(1982년 사망)의 둘째 아들로 1996년부터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1비서를 지냈다. 그러나 1998년 1월 비리사건에 연루돼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 비서로 좌천됐다가 2003년 당 총무부 부부장(차관급)으로 재기한 뒤 2006년 4월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로 발탁됐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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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룡해는 누구 ▼
김정일을 형처럼 따랐던 ‘태자당 멤버’


최룡해는 1949년 김일성 주석의 절친한 빨치산 동료이자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을 지낸 최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현은 1950년대까지도 김일성에게 사석에서 말을 놓는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김일성 유일체제 구축에 기여한 공로도 누구보다 높다.

1956년 8월에 일어난 북한 최대의 권력투쟁인 이른바 ‘8월 종파사건’ 때 최현이 회의장에 들어가 권총을 뽑아들고 반대파들의 기를 꺾어 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8월 종파사건이란 중국계 연안파와 일부 소련파가 합세해 절대권력자가 돼 가고 있던 김일성을 축출하려고 한 사건. 최현은 1970년대 초반에 후계 문제가 부상할 때에도 김정일의 편에 서서 세습을 반대하는 인물들을 숙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런 공로로 최현은 지금도 북한에서 충신의 본보기로 선전되고 있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여러 편 제작됐다.

김정일과 최룡해의 인연은 어려서 이웃으로 살면서 시작돼 오랫동안 끈끈하게 이어졌다. 북한판 ‘태자당’ 멤버 중 최선두 그룹이던 최룡해는 김정일을 형처럼 따랐고 그와 똑같은 코스인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대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거침없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1980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해외교양지도국장을 거쳐 37세인 1986년에 청년동맹 수장 자리에 올랐다. 청년동맹은 노동당에 입당하지 않은 10대 후반∼30대 중반의 청년을 망라하는 조직. 김정일은 자기가 권좌에 오르면 최룡해에게 노동당 조직부 제1부부장을 시키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내비쳤다고 한다.

김일성 부자의 절대적인 신임을 등에 업은 최룡해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전성기를 이어간다. 1989년 북한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도 그가 총책을 맡았다. 1996년 1월에는 청년동맹의 명칭에 김일성의 이름을 붙여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개명했다. 당시 청년동맹 소속원은 800만 명이나 돼 청년동맹은 노동당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권력조직이 됐다.

하지만 최룡해는 대규모 아사 사태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막대한 외화를 착복해 매일 밤 향락 파티를 일삼다가 1998년 군 보위사령부의 표적이 돼 숙청된다. 그가 전국에서 아름다운 처녀들을 뽑아 자기 옆에 두고 그중 일부와 변태적인 성행위를 한 사건은 북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사건으로 숱한 사람이 연루돼 처형됐지만 정작 그는 김정일의 특명으로 평양 상하수도관리소 당비서로 좌천됐을 뿐 목숨은 부지한다. 이후 그는 2003년 당 총무부 부부장(차관급)으로 재기한 뒤 2006년엔 황해북도 당비서로 발탁된다.

하지만 최룡해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분노는 지금도 여전하다. 북한 주민들에게 방탕과 퇴폐의 대명사로 낙인 찍힌 인물이 당조직부 1부부장이 되면 김정은 후계체제가 감수해야 할 부담은 매우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임명이 강행된다면 김정일에게 믿을 사람이 얼마나 없는지를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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