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도 ‘공정 논란’]“전문성 없어도 땜질 충원… 평가 제대로 되겠나”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03:00수정 2010-09-16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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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 어떻게 하나” 관심 쏠린 학부모들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학 입학사정관전형 지원전략에 관한 설명회장에는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학부모가 몰렸다. 이날 설명회에는 대학입학사정관이 직접 강사로 나섰지만 입학사정관전형에 대한 학부모들의 정보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입학사정관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한나라당 정두언 홍준표 의원이 15일 ‘공정성’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것. 그러나 대학가에서는 도입 3년이 지나도록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얘기한다. ‘한 줄 세우기 식’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콘텐츠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물론이고 입학사정관, 학생, 부모 등 당사자들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입학생을 뽑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모르다 보니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 ‘무늬만 입학사정관제’

올해 초 서울지역 일반계고 진학 담당 교사들은 지난해 고려대와 연세대가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뽑은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내신) 성적을 조사해 공개했다. 합격한 학생 모두 1등급 중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당시 교사들은 “학생부에는 교과 성적뿐 아니라 비(非)교과 영역도 포함해야 하는데 대학들이 1단계에서 내신 성적으로 학생들을 걸렀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두 대학에서는 “공정성 시비가 있을까 봐 내신을 선발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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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 지원 자격도 문제다. 연세대 글로벌리더 전형에 지원하려면 외국어, 외국어에 관한 교과와 국제 전문 교과를 최소 36단위 이상 들어야 한다. 일반계고 학생들이 충족하기 버거운 기준이다. 실제로 지난해 이 전형으로 뽑은 496명 중 232명(46.8%)이 외고 출신이었다.

하지만 외고생들은 오히려 ‘입학사정관 전형이 내신을 너무 많이 반영해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한다. 한 외고생은 “연세대 글로벌리더 전형이나 고려대 세계선도인재 전형이 없으면 외고생은 두 대학에 가지 말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칼을 빼들었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이 두 전형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 줄 세울 수밖에 없는 입학사정관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300명을 뽑는 A대는 정원 300명은 등수 구분 없이 뽑는다. 그러나 301등부터는 줄을 세운다. 합격자가 다른 학교로 옮겨갈 것에 대비해 예비 순번을 정해 두는 것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입학사정관제에서 무 자르듯 여기까지는 합격, 저기부터는 불합격이라고 학생들을 정할 수는 없다”며 “그런데 대학에서 정원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순위를 매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증 기간이 한 달 남짓에 불과한 것도 대학들은 불만이다. 학생들의 다양한 면모를 검증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력까지 부족해 입학사정관 혼자서 수백 명의 서류를 검토하기도 한다.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미국처럼 1년 가까운 기간에 학생을 검증할 수 있어야 진짜 정성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며 “지금은 줄을 세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초중고 교육과정과 입학 사정관제가 따로 노는 것도 준비가 부족해 빚어지는 일이다. 한 대학 입학처장은 “입학사정관들도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인데 갑자기 잠재력을 평가하라는 건 무리”라며 “일선 고교의 교과과정이 다양하지 못한데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인재를 뽑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입학사정관은 전직 ‘기간제 교사’?

올해 초 경기도 한 대학에서 입학사정관 모집 공고를 내자 1명을 뽑는 데 47명이 몰렸다. 지원자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자기 직업을 ‘기간제 교사’라고 밝혔다. 지난해 5개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 양성 과정을 운영했지만 이 과정을 수료한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이 대학 관계자는 “최고의 교육전문가가 입학사정관이 돼야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교육에 발만 담근 적이 있어도 전문가 소리를 듣는 실정”이라며 “양성과정을 거친 이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정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진 이유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달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을 실시하는 126개대에서 전임 입학사정관으로 채용한 사람은 511명으로 학교당 4.1명꼴이다.

수도권 모 대학 입학사정관은 “상식적으로 교육학 박사학위가 있고 연륜도 있는 인물이 입학사정관 중에 적어도 한 명은 있어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지 않겠냐”며 “지금은 꼭 입학사정관을 하겠다는 인물이 아니라 ‘일자리’가 필요한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채용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학 입학사정관도 “대학 교수들은 입학사정관을 독립 기구가 아니라 입학처의 부속 기관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짙다”며 “이런 상황에서 전문성보다 ‘부리기 쉬운’ 직원을 뽑겠다는 생각이 강한 대학이 여럿”이라고 전했다.

입학사정관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불안한 것도 걸림돌이다. 이 때문에 보수를 좀 더 주겠다는 학교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입학사정관도 적지 않다. 한 입학사정관은 “학교 특성에 맞는 학생을 뽑겠다는 게 입학사정관제의 취지이다. 그런데 학교 사정을 잘 모르는 ‘철새’ 입학사정관이 제대로 학생을 걸러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 대학 준비 부족하니 사교육에 귀 기울여

이달 초 한 사교육업체가 주최한 설명회에는 학부모 4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설명회 주제는 ‘엄마가 준비하는 입학사정관제 스펙 만들기’.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 이모 씨는 “입학사정관제는 봉사, 독서, 진로활동 등을 꾸준하게 해야 한다고 하니 엄마로서 어떻게 준비시켜야 할지 부담된다”며 “잘 모르고 불안하니까 준비시켜준다는 학원에 현혹되는 게 사실이다. 요새 엄마들끼리 모이면 어떤 학원이 관리를 잘해주는지 정보를 교환한다”고 말했다.

대교협은 공인어학시험 성적이나 교외수상 실적 등 사교육 의존 가능성이 높은 요소를 평가하는 것을 금지했다. 대신 교내경시대회나 독서, 체험활동 등 학교생활과 관련된 요소를 강조했다.

하지만 박모 씨는 “혹시 스펙이 모자라서 합격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교외 수상실적을 안 본다고 해도 오히려 공신력 있는 대회는 중요할 것 같고, 요새 교내 경시대회도 경쟁이 붙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이모 씨도 “온실 속 화초를 키우듯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관리를 해줘야 아이가 성공하는 것 같다”며 “요새 ‘엄마 노릇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자기주도형 학생을 뽑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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