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60주년]韓美노병 4인… 60년만에 회고한 ‘1950년 9월 15일, 그날’

동아일보 입력 2010-09-13 03:00수정 2010-09-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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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했던 작전… 바다메운 8개국 261척 함대 본뒤 승리 확신”
韓美전우의 어깨동무 12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60년 만에 만난 인천상륙작전의 한미 전우들. 왼쪽부터 최규봉 전 켈로부대장, 윌리엄 치크 씨,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 찰스 루블 씨. 이들은 “우리는 생애에서 가장 잊지 못할 일을 해냈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저는 한국 해군 704함 지휘관입니다.” “아, 저는 미군 1사단 1연대 대전차분대 분대장입니다.” 시공간의 무대는 잠시 1950년 9월 15일 인천 앞바다로 이동한 듯했다. 한국과 미국의 백발 노신사 4명은 12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서로를 와락 끌어안으며 손을 굳게 잡았다. 이들은 미군 참전용사 윌리엄 치크(81), 찰스 루블 씨(81)와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85), 최규봉 전 켈로부대장(87). 모두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던 노병들이다. 치크 씨와 루블 씨는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 참석차 11일 방한했다.》

○ “연합함대 바라보며 승리 확신했다”

인천상륙작전 며칠 전까지 부산에 있던 공 전 사령관(당시 해군 소령)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수송함에 올랐다. 상륙작전에 투입된다는 사실은 9월 12일 ‘우리는 인천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할 것’이라는 스피커 방송을 듣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해군 704함 함장으로 유엔군 연합함대에 참여한 그는 “당시 뛸 듯이 기쁘고 설렜다”고 회상했다.

“갑판에 올라 보니 8개국에서 온 261척의 함선이 가득 메우고 있어 바다가 안 보이고 하늘을 가릴 정도였어요. 이 작전이 반드시 성공해 서울까지 단숨에 수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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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확신한 것은 미군 대전차분대장으로 일본에서 출발한 치크 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군은 북한군의 진격에 밀려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하는 등 예상 밖 고전을 면치 못하며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치크 씨는 “인천 앞바다의 악조건 때문에 ‘설마 여기에서 할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인천 앞바다에서 보니 여기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펼친다면 적의 허를 찌르겠다 싶더라”며 “태평양전쟁의 영웅인 맥아더를 믿었다”고 말했다.

상륙작전 과정에서 한미 병사들은 서로 만나지 못했다. 7사단 통신중대 무전병이었던 루블 씨는 “양쪽 군이 각각의 함선으로 이동해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서로 교류할 기회는 없었다”며 “다만 한국군이 상륙작전에 참여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는 사실도 나중에 들었다”고 말했다.

○ “생애 가장 길고 힘든 하루였다”

이들은 당시 상륙작전을 회상하며 “수월한 작전은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치크 씨는 “정말 길고 힘든 하루였다”며 잠시 먼 곳을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인천 앞바다에 도착했는데 해안은 금세 갯벌로 변하더군요. LST(Landing Ship Tank·상륙용주정)가 이동할 수 없어 난감했죠. 결국 장병들만 먼저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 수십 m를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상륙작전을 펼치기에는 악조건이었어요.”

듣고 있던 공 전 사령관도 맞장구쳤다. “그래서 당시 상륙작전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 인천이 아니라 군산이나 원산이라는 억측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의 저항은 예상보다 강하지 않았다. 15일 오후 7시까지 모든 작전이 예정대로 완료돼 유엔군 7만5000명이 모두 상륙했고 이튿날인 16일에는 인천의 전 지역을 수복했다.

치크 씨는 “인천에는 예상과 달리 북한군이 거의 없었지만 서울 근교에서 많은 적을 만났다”고 말했다. 공 전 사령관은 “연합함대의 규모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속수무책으로 밀린 인민군 다수가 서울 방위전을 기약하며 후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우리가 등댓불 밝혔다” “당신이었군”


유엔군 연합함대가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데는 한국인으로 구성된 켈로부대의 역할이 컸다. 미군 소속 비공식 첩보부대로 활동했던 이 부대는 인천상륙작전 개시 한 달 전인 8월부터 작전에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상륙작전 직전인 9월 14일에는 팔미도의 등대를 탈환해 길잡이 역할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최 전 부대장은 “우리가 팔미도에 잠입해 보니 북한군 1개 부대가 있었는데 이들은 기습을 예상치 못했는지 무척 당황했다. 14일 오후 10시 격전 끝에 간신히 등대를 점령하고 15일 0시에 불을 밝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전 부대장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자 루블 씨는 “오, 당신이었군요”라며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최 전 부대장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 고마움을 표시했다.

최 전 부대장은 당시 등대 탈환 작전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팔미도 등대에 걸었던 성조기를 보관해오다 1955년 미국에 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선물로 보냈다. “몇몇 미국 언론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보내달라고 했지만 은인에게 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일로 맥아더기념관으로부터 감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공 전 사령관은 “함락 직전의 대한민국에 인천상륙작전은 말 그대로 천우신조였다”며 “일각에서는 상륙작전 때의 민간인 희생을 이유로 맥아더 장군의 동상까지 철거하자고 하지만 당시 희생이 없었다면 남한에서는 엄청나게 큰 희생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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