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그후, 무엇을 할것인가]<5·끝>軍을 위한 예비역 장성들의 제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5일 03시 00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創軍의 각오로 국방 새 틀 짜자

‘주적’ 없는 군사전략은 난센스
北도발 원천차단 전략 수립
육해공군 합동성 강화 나서야

“가장 강한 종(種)은 힘이 세거나 몸집이 큰 종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

국방부가 지난해 발간한 ‘국방개혁 2020’ 설명책자에서 “시대가 변화를 요구하며, 군도 안주하지 않겠다”면서 인용한 진화학자 찰스 다윈의 경구(警句)다. 동아일보가 ‘천안함 그후, 무엇을 할 것인가’ 시리즈를 위해 인터뷰한 예비역 장성과 군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한국군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이들은 특히 독자적 전략 수립 역량을 갖추고, 군의 문화를 바꾸고, 자군 중심주의를 벗어나는 계기로 삼아달라고 했다.

○ 합동성 강화를 위해 3군 융합 당부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군 수뇌부에게 전략마인드의 강화를 당부했다. 그는 “한반도 전체를 놓고 큰 틀의 전략을 짜는 데 군이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며 “그동안 그 역할은 주한미군이 맡았지만, 언젠가 닥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둔 우리 군에 절실한 과제”라고 했다.

육해공군의 합동성(jointness) 강화를 위해 3군의 협력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은 “군인의 조국은 하나다. 군은 자신이 속한 개별 군을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다”며 “군 후배들이 합동참모본부의 근무 비율을 따지기에 앞서 3군을 모두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육군이 해군되고, 해군은 공군이 돼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해일 전 해군참모총장은 “군의 합동성이 ‘육해공군의 지상군화’로 오해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합동성의 진정한 의미는 해군은 바다에서, 공군은 하늘에서, 육군은 지상에서 최대의 전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3군을 한 색깔로 섞는 것은 오히려 합동성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한 민간 전문가는 “천안함 침몰로 드러났듯이 해군의 대비태세를 다잡는 게 시급하다”면서도 “해군 예산 총액은 그대로 둔 채 대양해군 준비와 기본적 방위를 모두 잘하라는 말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해군과 공군 출신 예비역 장성들은 대통령의 참모로 해공군을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대통령이 3군을 통할하는 마인드로 상황을 판단하도록 조언할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 정신전력 강화와 민간마인드 도입

민간인으로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을 지낸 전제국 국방연구소 초빙연구원은 “전차 전투기 군함 같은 최신 무기를 갖추는 것만이 국방력 강화는 아니다”며 정신 재무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가 위기관리체계를 유기적으로 갖추는 일, 20년 앞을 내다보는 긴 안목으로 여론에 흔들림 없이 국방개혁을 추진하는 일이 모두 국방을 강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군을 떠난 뒤에 비로소 우리 군의 의사결정 구조가 느리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군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민간기업의 효율성은 배울 게 많다”고 지적했다. 다른 민간 전문가도 “군을 제대로 이해하는 경영·조직 분야의 민간 전문가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들을 기용해) 군도 변화를 따라잡고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민간 경영리더십 도입으로 ‘군기 약한 군’이 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경덕 전 국방부 국방개혁실장은 “언제부턴가 군에서 배려의 리더십이 등장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며 “군에서는 전투적 사고 중심의 리더십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말했다.

○ 천안함 침몰 이후 대응 방안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으로 최종적으로 밝혀지면 군은 북한의 2차, 3차 도발을 막는 억지력(deterrence) 확보를 위한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군사적 조치의 실제 이행 여부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지만, 군사적 조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외교적 제재만 강조해서는 억지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의 무력시위, 제한된 목표의 타격 등 군사적 조치가 가능하다는 점을 북한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예비역 공군 장성은 “과거 한미 연합 팀스피리트 훈련 때면 북한군은 1개월간 비상이 걸렸다”며 “이 훈련을 재개해 북한군을 긴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기습은 막지 못하지만 ‘기습하면 다른 데서 죽는다’는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대응책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북한군이 천안함 침몰 사후 평가를 내릴 때 ‘한국의 안보의식이 높아지는 역효과를 냈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의 대북 위협 인식이 높아지고, 남남(南南)갈등이 줄고, 군의 선진화를 지원하는 시민이 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면 대북 보복은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라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육해공군 ‘천안함 사건 비판’에 대한 대응 ▼

해군 “연안전투력-지역해군 증강 병행”
공군 “공중급유기는 北 대응 필수전력”
육군 “합참에 우수인력 배치 합동성 강화”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육해공군에 쏟아진 각종 비판에 대해 각 군은 깊이 반성하며 새롭게 태어날 것을 다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부 지적에 대해서는 각 군이 처한 현실을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해군은 평시에 초계함이 순식간에 두 동강 나는 초유의 사건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겪는 일인 만큼 초기 대응에 우왕좌왕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대양해군을 지향하다 앞마당에서 당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는 분위기지만 그렇다고 연안해군력만 강조할 수 없다는 게 해군 측의 설명이다.

해군의 한 간부는 “해군 전력은 연안전투를 위한 고속정 중심으로 증강을 계속해 왔다”면서 “남한의 3면이 바다이고 주변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안 전투와 북한과의 전면전을 대비하면서 동시에 주변국에 대비해 왔다”고 말했다. 그동안 ‘투 트랙’으로 전력 증강을 해 왔으며 연안전력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대양해군은 아니더라도 지역해군 정도는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응 매뉴얼이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해군의 영관급 장교는 “해군의 대응 매뉴얼은 갖춰져 있다”며 “다만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매뉴얼을 적용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공군은 전투에서 합동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후된 전투기들의 교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30여 년간 운용해온 F-5, F-4 전투기들은 도태가 이미 시작돼 5년 뒤 전력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공중급유기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군 관계자는 “공중급유기는 일본 등 미래 위협에 대한 전력증강이 아니라 현존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필수 전력”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공군이 보유한 KF-16 전투기의 행동반경은 400km에 불과해 평양 이북 지역의 타격이 불가능하다. 평양 이북에 대한 타격을 위해서는 공중급유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울러 공군은 조종사들의 집단 이직을 막기 위해서는 돈보다는 진급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 관계자는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조종사 가운데 대령 진급률이 70% 수준은 돼야 한다”며 “국방부는 현재 60% 수준의 대령 진급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3군 합동성 강화에 주요 걸림돌로 지적돼 온 육군은 무엇보다 합동참모본부의 우수인력 배치를 위해 장교 인사나 보직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육군은 육군 출신 장교의 합참 보직을 합참의장에게 맡기고 있다. 해공군은 각 참모총장이 각 군 출신 장교의 합참 보직을 결정한다.

육군은 또 국방부와 합참 근무를 통해 육해공군을 두루 알도록 하기 위해 ‘합동특기’를 마련해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육군은 육군이 합참의 작전라인을 독식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육군 관계자는 “육군이 합참 작전라인에 많이 포진한 것은 육군 병력이 해공군에 비해 많고 북한의 지상군이 가장 위협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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