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할일 못하는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0일 03시 00분


민생 등진채 회기 다 보내고… 여론 들끓으면 “원포인트 법안처리”
여야 “성범죄 법안 이달 처리”… 전자발찌 소급적용도 논의키로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 사건의 충격이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이 그동안 미뤄왔던 아동 성폭력 관련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키로 합의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8일 원내수석부대표 회의를 갖고 이달 18일 ‘원포인트 국회’를 열어 2월 임시국회 파행으로 처리하지 못한 39개 민생법안을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양당 지도부는 9일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도 18일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이달 말까지 한 번 더 원포인트 국회를 열어 처리하기로 했다.

당초 한나라당은 야당의 3월 임시국회 소집 요구를 ‘방탄 국회’로 규정하고 거부해 왔으나 실종된 지 11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부산 여중생 이유리 양(13) 사건의 불똥이 국회로 튀자 부랴부랴 ‘원포인트 국회’ 개최에 합의했다.

여야는 지난해 ‘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 성폭력 관련 법안 41개를 앞 다퉈 내놓았지만 세종시 문제 등 다른 이슈가 불거지고 아동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자 단 1건만을 연말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채 손을 놓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만약 국회가 제때 법안을 통과시켰다면 성범죄 전과자로 이 양을 살해한 김길태 씨가 ‘전자발찌’를 착용했거나 신상이 주변에 알려져 이번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비난 여론이 국회를 향해 들끓고 있다.

비난 여론을 의식한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날 ‘전자발찌법’을 과거 성범죄자까지 소급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정상적인 법개정 절차 없이 ‘전자발찌법’의 소급적용을 추진한다면 위헌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발찌법’의 확대 적용이 필요한 측면과 소급적용의 문제점 모두 저울대에 올려놓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인데, 평소 뒷짐만 지며 정쟁으로 소일하던 정치권이 뒤늦게 논쟁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비난 여론에 떠밀려 여야가 원포인트 국회를 여는 것은 올 들어 벌써 두 번째다. 여야는 저소득층 대학생에게 등록금을 빌려주고 취업 후 이를 상환하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 특별법’을 지난해 말까지 처리하지 않다가 ‘시급한 민생법안조차 외면한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대학 신입생 등록일을 10여 일 앞두고 가까스로 원포인트 국회를 열어 이 법안을 처리했다. 국회가 법안 1건을 처리하기 위해 원포인트 국회를 여는 것은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는데 18대 국회, 특히 2010년 들어 원포인트 국회가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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