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恥국회 1년, 또… 여야, 예결위 점거 몸싸움 재연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해머폭력 세계적 망신 반성없이

민주당 의원들이 1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의 위원장석을 점거하고 심재철 예결위원장 등 한나라당 의원들을 막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이시종 의원이 위원장석에 앉아 있다. 이날 국회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부주석은 회의장 밖의 소란만을 목격했다. 이종승 기자
민주당 의원들이 1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의 위원장석을 점거하고 심재철 예결위원장 등 한나라당 의원들을 막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이시종 의원이 위원장석에 앉아 있다. 이날 국회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부주석은 회의장 밖의 소란만을 목격했다. 이종승 기자
17일 오전 9시 35분 국회 본회의장 맞은편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방금 의원총회를 마친 민주당 의원 40명이 비어있는 회의장에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이시종 의원이 비어있던 위원장석을 차지했고 송영길 의원 등 10여 명이 이 의원을 에워쌌다. 연단 아래에선 김재윤 의원 등이 ‘4대강 예산 삭감, 교육복지예산 확충’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쳤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한나라당 의원 25명이 위원장석으로 다가가려 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제지했다. “날치기 조장하나?”(한나라당 김성식) “시끄러워!”(민주당 강창일) 등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전 세계에 ‘부끄러운 격투기 국회’의 오명을 떨친 지난해 12월 18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의 해머, 쇠지렛대 소동 이후 1년. 폭력과 업무거부 등으로 2009년을 점철해온 한국 국회가 결국 연말 예산안 처리를 놓고 다시 물리적 충돌의 악순환으로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간의 3자 회동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야는 결국 대화와 타협의 묘를 살려내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9시 시작된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이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원회를 단독으로 구성하는 안을 의결하려 하니 실력으로 저지하자”는 방침을 정한 뒤 곧바로 예결위 회의장 점거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전날 정몽준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으로 모처럼 되살아나는 듯했던 협상의 싹을 무시한 채 계수소위 일방 구성 방침을 강행하려 했다. 한나라당 소속 심재철 예결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예정대로 회의를 진행하겠다”며 위원장석에 앉으려 했으나 민주당 의원들에게 저지당했다.

1시간가량의 실랑이 끝에 심 위원장은 “성원이 됐으므로 회의를 시작하겠다. 정회를 선포한다”며 의사봉 대신 주먹으로 위원장석 옆 탁자를 두드리며 개회와 정회를 동시에 선언한 뒤 한나라당 의원들과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오후에도 전체회의는 속개되지 못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동시에 각각 의원총회를 열어 상대를 강하게 규탄했다.

▼ 시진핑 지나가는데 북새통… 끝없는 망신살 ▼

단상서 쫓겨난 위원장
17일 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 위원장석을 점거해 회의 진행이 어려워지자 심재철 위원장(아래 왼쪽)이 한나라당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승 기자
단상서 쫓겨난 위원장
17일 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 위원장석을 점거해 회의 진행이 어려워지자 심재철 위원장(아래 왼쪽)이 한나라당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승 기자
심 위원장과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오후 4시 10분경 회의장을 다시 찾아 위원장석 탈환을 시도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강력 저지에 가로막혀 결국 오후 4시 30분 퇴장했다. 한나라당 김정훈 원내 수석부대표는 “예결위원도 아니면서 회의장을 점거한 민주당 의원은 나가 달라”고 항의했다. 한나라당은 18일 오전 10시 예결위 전체회의를 열어 계수조정소위 구성을 재시도하기로 했다.

양당은 장기전 태세에 돌입했다. 한나라당 안 원내대표는 이날 소속 의원들에게 ‘해외출장 자제령’을 내렸고 민주당 의원 20여 명은 예결위 회의장에서 밤샘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18일부터는 조(組)를 짜 ‘예결위원장석 지키기’에 나서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유엔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19일 귀국한 뒤 3자 회담에 어떤 견해를 내놓을지에 따라 국회 대치 상태는 휴전이 될지, 확전이 될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17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예결위에서 처리해야 본회의에 상정할 것이며 직권상정은 하지 않겠다”며 “특히 예산안이 연내에 처리되지 못하면 국가위신 추락과 국민의 비판 등에 대한 모든 책임은 사실상 이를 막은 쪽이 전적으로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예산안 논쟁이 물리적 충돌로 귀결된 것은 결국 1년 전 폭력 국회에 대한 국내외 여론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12월 18일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기 위해 외통위 회의실 문을 잠갔고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 당직자들은 쇠지렛대와 해머, 정으로 문고리를 부쉈다. 해머로 회의장 문고리를 부순 문학진 의원과 외통위원 명패를 내던져 부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지난달 법원에서 벌금 200만 원과 50만 원을 각각 선고(1심) 받았지만 여야 정치권은 폭력 국회의 재발 가능성에는 눈과 귀를 막아왔다. 4월 폭력 의원 징계안을 의결하기 위해 소집됐던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야당 의원 전원이 불참해 안건이 상정되지 못한 뒤 지금껏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 폭력 국회 이후 폭력의원 제명과 윤리특위 강화 등을 골자로 여야가 앞 다퉈 마련한 법안들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 회부된 뒤 9월 30일 정개특위 시한이 종료되면서 다시 국회 운영위원회로 넘겨졌으나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날 국회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도 소란을 목격했다. 오전 9시 15분경 국회에 도착해 본관 3층 접견실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을 만난 시 부주석은 9시 50분경 김 의장의 배웅을 받으며 국회를 떠나면서 예결위 회의장 앞을 지나갔다. 그곳엔 여야 당직자와 기자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회의장 안의 몸싸움 장면이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국회 관계자는 “시 부주석이 ‘무슨 일이냐’고 묻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