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정치에 갇힌 ‘낡은 초선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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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외치던 與소장파, 세종시엔 입닫아
‘민본21’ ‘선진과통합’ ‘비례모임’
친이-친박 갈려 제 역할 못해

한나라당 중도성향의 초선의원 모임인 ‘선진과 통합’ 회원들은 9일 세종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식당에 모였다. 그러나 정작 이 자리에서는 세종시의 ‘세’자도 거론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 모임의 전신은 올해 초 친이(친이명박)계 의원 21명이 중심이 돼 출범한 ‘선진화를 위한 초선의원 모임(선초회)’. 최근 친박(친박근혜)계 초선 의원 5명이 합류하면서 탈계파 모임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날 모임의 ‘알맹이’가 빠진 것은 친이와 친박계 의원들 간의 눈치 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친이 의원들은 당초 세종시 원안 수정 쪽으로 의견을 모으려고 했지만 친박계 의원들을 의식해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선진과 통합은 지금까지 세종시 문제에 대해 아무런 태도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개혁 성향을 자처하는 초선 모임인 ‘민본21’도 처지는 비슷하다. 민본21은 5일 세종시 문제에 대해 전문가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고 이후에도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정부안이 나올 때까지는 논란을 자제하자”는 ‘중진급 해법’만 내놨다. 그동안 민본21이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자료를 내며 적극 대응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당내에선 “민본21도 계파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니냐”는 뒷얘기가 나왔다. 한 친이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며 모임을 탈퇴하기까지 했다. 민본21은 4월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쇄신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각 계파의 견해가 엇갈렸던 조기전당대회 문제는 정면으로 건드리지 못해 비판을 받았었다.

비례대표 초선 의원 21명도 수시로 모이긴 하지만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친목 모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의원은 시시콜콜한 일로 감정 대립을 하며 서로를 비난하거나 아예 모임에 나오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초선 의원은 모두 89명이다. 전체 169명의 52.7%나 된다. 이들은 당이 경력과 전문성 등을 인정해 새롭게 발탁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당내에서 정책개발과 정무 능력에서 ‘밥값’을 하는 초선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느냐는 냉소적 반응이 많다. 대표적 초선모임들의 현주소가 이 같은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원내대표를 지낸 홍준표 의원은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초선의원까지 친이와 친박으로 갈려 계파에 매몰돼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당과 국민을 보고 자기 정치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중립성향의 한 중진의원도 “초선 중에는 패기도, 결기도, 비전도 없는 ‘3무(無)’의 특징을 보이는 의원이 적지 않다”며 “비겁한 자들에게 ‘개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과거 한나라당에는 소장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개혁 성향의 행보로 주목을 받았던 초선의원이 적지 않았다. 16대 국회에서는 남경필 김영선 김부겸(현 민주당) 의원 등이 주축이 됐던 ‘미래연대’와 박형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이 참여했던 17대 국회의 ‘새정치 수요모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계보정치 타파 △지역주의 청산 △당리당략적 정쟁 지양 등을 내걸고 당 개혁에 앞장섰다. 비록 지금은 이들 중 상당수가 계파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당시에는 이들이 갖는 정치적 위상이 만만치 않았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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