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6인의 아마조네스’ 여성 세무조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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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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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병원-의상실 웃으며 들어갔다비밀장부 - 차명계좌 무섭게 찾아낸다부드러움과 꼼꼼함으로 납세자 ‘무장해제’시켜… 손님 가장해 탈루 캐기도

국세청의 유일한 여성 세무조사팀인 서울지방국세청 225조사반(조사2국 2과 5계)이 23일 김정순 팀장(가운데) 주재로 현재 진행 중인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기획세무조사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국세청의 유일한 여성 세무조사팀인 서울지방국세청 225조사반(조사2국 2과 5계)이 23일 김정순 팀장(가운데) 주재로 현재 진행 중인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기획세무조사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수술 예약금은 박×× 씨 명의의 A은행 ○○○○-○○○○ 계좌로 입금해 주세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 2과 5계 소속 김모 조사관은 이 말을 듣는 순간 직감적으로 탈세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병원의 각종 회계자료에서 보지 못했던 낯선 계좌번호라 차명계좌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조사관은 올 7월 고소득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획세무조사 때 세금 탈루 의혹이 큰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를 맡고 있었다. 사전 자료검토를 마친 그는 환자로 가장해 진료를 받았다. 그리고 수술 일정을 잡겠다고 하자 병원 측에서 예약금을 넣을 계좌번호를 알려준 것이다.

결국 이 계좌는 병원 납품업체 사장의 부인 명의인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장이 소득을 감추기 위해 개설한 차명계좌였던 것. 계좌추적 결과 3개월 동안 1억 원이 넘는 돈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이 계좌와 연결된 다른 차명계좌들을 연이어 찾아내 최근 3년 동안 이 성형외과가 10억 원이 넘는 소득을 탈루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 세무 법전과 전자계산기로 무장

김 조사관은 국세청에서 유일하게 여성들로만 구성된 세무조사팀인 ‘225조사반’(조사2국 2과 5계의 약칭) 소속이다. 225조사반은 여성팀장(사무관) 1명과 여성조사관 5명으로 2007년 2월 출범했다. 이들은 여성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성형외과, 피부과, 산부인과, 피부관리실, 미용실, 고급의상실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전담하고 있다.

225조사반은 3년 가까운 활동기간 중 뛰어난 실적을 올려 국세청 직원들 사이에서 아마존의 여전사를 뜻하는 ‘아마조네스’로 불린다. 한 손에는 세무 법전을, 다른 한 손에는 전자계산기를 무기로 든 세정(稅政)의 여전사인 셈이다.

이들의 활약은 남성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여성전용 병원, 고급 의상실 등에 대한 세무조사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미용실에 손님으로 들어가 머리를 손질한 뒤 현금을 내면서 숨겨진 장부의 위치를 확인하기도 하고, 수표를 낸 뒤 계좌추적을 통해 그 수표가 입금된 계좌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차명계좌를 찾아내기도 한다.

김정순 팀장은 “여성특화 분야에서 세원(稅源)정보 입수에 유리하다는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금 추징에 대한 납세자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여성들이 주로 찾는 병원 등에 남성들이 몰려가 조사하는 것보다 납세자의 저항이 덜하고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애로사항도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일본도 ‘여성조사반’ 벤치마킹

225조사반은 국세청의 여성 리더 양성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7월 백용호 청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여성 국장 2명이 탄생했지만 국세공무원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 여성은 수에 비해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세청의 여성 직원들은 그동안 핵심 업무인 세무조사 분야보다는 총무, 징세, 민원실과 같은 지원부서에 주로 배치됐다.

225조사반이 남성 못지않은 강도 높은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뛰어난 성과도 거두자 일본의 조세당국도 벤치마킹하고 있다. 상급자인 김건중 과장은 “일본은 우리보다 2년 늦은 올해 7월 2개의 여성조사반을 구성했다”며 “꼼꼼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성의 장점이 신뢰감 있고 공정한 세무행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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