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장 최고 뻣뻣기관… ‘관가 저승사자’의 힘?

  • 입력 2009년 10월 16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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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자료요청에 “묵비권”… 공직윤리지원관실 어떤 곳이기에

“룸살롱 출입 풍문… 조심하라” 장관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감찰
공직비리 外 4대강 점검도 간여
“비선조직 변질 막아야” 지적

#1 국세청 국장급 간부 A 씨는 1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A 씨는 노동부 국장 출신인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으로부터 “서울 강남의 룸살롱에 자주 드나든다는 풍문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구두 경고를 들었다.

#2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최근 검찰의 고위 간부 B 씨를 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강원도에 땅을 샀다는 의혹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무소속 신건 의원 측은 “내사 결과는 검찰에 이첩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의 총리실에 대한 국정감사를 계기로 관가에서 ‘저승사자’ ‘암행어사단’으로 불리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권한과 역할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 4대강 살리기 사업도 담당?

신 의원이 받은 국감 답변 자료에 따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올해 들어 설 연휴와 대통령의 유럽·미국 순방, 을지훈련, 하계휴가 기간 등 5차례에 걸쳐 금품수수, 공금횡령, 업무부당처리 등 155건의 공직기강 해이 사례를 적발했다. 또 이를 해당기관에 통보해 면직(2명) 징계(3명)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점검 대상은 중앙 부처는 물론 경찰서와 세무서, 지방자치단체까지 망라한다. 경기도의 한 세무서 관계자는 “올봄 갑자기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들이닥쳐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서류를 뒤져 불쾌했다”고 말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국회에 제출한 답변 자료에서 “올해 대표적인 자체 조사 사안으로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위한 정책 실태 점검을 꼽을 수 있다”고 밝힌 점도 눈길을 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기구의 설립 취지인 공직기강 확립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의 남미 순방 기간에는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한 시도지사 및 수도권 기초자치단체장의 견해를 청취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윤리지원관실 핵심 관계자는 “우리의 업무 영역은 원전 항만 교도소 등 매우 광범위하다”고 전했다.

○ ‘뻣뻣 피감기관’

막강한 권한 때문인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번 국감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가장 뻣뻣한 피감기관’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민주당 김동철 의원실은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여러 차례 인적 구성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공직감찰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어서 비공개’라는 단 한 줄짜리 서면 답변만 받았다. 민주당 이성남 의원은 “5월부터 여러 차례 자료를 요청했지만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오더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5일 정무위 국감에서는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이 민주당 홍영표 의원의 추궁이 이어지자 “의원님 어투가…”라고 홍 의원의 태도를 문제 삼자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이 나서 “어투가 그렇다니, 무슨 말투가 그래!”라고 호통을 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 정치권, 기능과 역할 투명해야

정치권 일각에선 고위 공직자를 상시적으로 감찰하고 조사하는 조직이 다양하게 가동되는 것은 필요하지만 공직 기강 확립을 명분으로 비선 조직처럼 가동될 가능성은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 의원은 5일 총리실 국감에서 “총리실장 소속 기관이 청와대에 보고하고 있는 점도 이상하지만 청와대 보고 라인도 사정 업무를 총괄하는 대통령민정수석실이 아닌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비선 조직’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 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은 “김대중 정부 때 공직기강을 담당하던 옛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사직동팀)도 점점 청와대 특명수사 전담기구로 변질돼 ‘권력 기구의 음지화’ 논란을 빚다 폐지됐다”며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 영역을 투명하게 겉으로 드러내야만 비선 조직 논란을 떨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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