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원]김일성 가족 공화국

  • 입력 2009년 9월 26일 02시 56분


북한은 1972년 12월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해 김일성 당시 내각수상을 ‘국가주석’에 추대했다. ‘수령절대주의’라는 유일지도체제를 확립한 것도 이때다. 동서 간 해빙 무드 속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북한이 올 4월 개정한 헌법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국가사업 전반을 지도하는 최고지도자’로 규정하고 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김 위원장은 이전에도 실질적인 최고지도자였지만 이제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맡겼던 명목상의 국가원수 업무까지 직접 관장하게 됐다.

▷새 헌법은 또 국방위원회를 ‘국가 중요정책을 입안하는 기관’으로 규정해 명실상부한 국가최고기관임을 명시했다. ‘공산주의’라는 대목도 빼고 ‘선군(先軍)사상’을 집어넣었다. 김 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이후 내세운 선군통치 이데올로기를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과 나란히 배치했다. 사회주의 마지막 보루를 자처해 온 북한이 공산주의 대신 선군사상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스스로 병영국가요, 군사공화국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력은 총구(銃口)에서 나온다는 현실을 웅변하는 듯하다.

▷선군정치의 지상목표는 ‘김씨 조선’의 ‘가족공화국’을 유지하는 데 있다. 최근 북한에서 촬영돼 공개된 선전벽보에는 3남 김정운을 ‘만경대 혈통을 이은 청년대장’으로 명기하고 ‘장군복, 대장복 누리는 민족의 영광’을 찬미하는 구절이 들어 있다. 김 위원장은 2001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태국은 강력한 전통적 왕실체제를 유지하고 오랜 격동의 역사 속에 독립을 보존했다”며 태국 왕가(王家)에 관심을 보인 일이 있다. 왕조를 만들려면 북한의 국호에서 ‘민주주의인민공화국’부터 빼야 할 것이다.

▷전 세계 사회주의 역사상 대(代)를 이어가며 권좌를 차지한 경우는 북한이 유일하다. 김일성 가족의 세습독재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러운 사회주의 이념보다 군대와 총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체제다. 북이 김일성 출생 100주년이자 ‘강성대국’ 완성의 해인 2012년경 3대 후계체제를 갖춘다 해도 노동당 중심의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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