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8월 24일 02시 5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23일 북한 조문단과 이명박 대통령의 ‘30분 만남’이 성사되기까지 남북은 물밑접촉 과정에서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북측은 다각도로 이 대통령과의 면담 분위기 조성에 나섰으나 청와대는 막판까지 뜸을 들였다.
○ 북측 “다 만나겠다”
북한은 이번에 조문단 파견에 앞서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 씨 석방, 현대그룹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의 5개항 합의,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제한 철회를 비롯한 ‘12·1조치’ 해제 등 잇달아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그만큼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21일 조문을 마치고 김대중도서관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만난 자리에서 배석한 홍양호 통일부 차관에게 “다 만나겠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라고 남측 당국자들과의 면담을 희망했다. 조문단은 이날 남측 인사들과의 만찬에서도 “북남관계 개선에 대한 남측의 진정성을 알아보기 위해 폭넓게 만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11시 40분경 조문단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회동이 결정되고 조문단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갖고 온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 대통령과 조문단의 면담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날 이 대통령이 조문단과 만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해명자료를 내고 “북한 조문단이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이 없고 현재로서는 만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22일 오전 현 장관과의 회동에서 북측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북남관계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이번 정권의 첫 당국 간 고위급 대화이니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운을 뗐다. 김 부장은 또 현 장관에게 청와대 예방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내에서는 “남북관계가 좋을 때도 보이지 않던 적극적인 태도”라는 평가가 나왔다.
현 장관은 김 부장과 회동한 뒤 오전 11시 44분경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을 나서며 “조문단의 귀환 일정이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후 2시 40분경에는 경호팀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호텔 앞에 폴리스라인이 만들어져 청와대 예방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 면담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은 청와대
이 대통령은 곧바로 현 장관 및 외교안보 참모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북측의 면담 요청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그 뒤 청와대 관계자들은 “오늘(22일) 면담은 없다. 내일 면담이 될지, 안 될지도 미정이다”고 밝혔고, 이날 오후 늦게까지 조문단에 뚜렷한 답을 주지 않았다. 정부 내에서는 이 대통령의 조문단 면담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즉각 면담에 응하지 않은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 조문단이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가 공식 행사인 국장(國葬)으로 결정된 뒤에도 김대중평화센터에 조문 일정을 알리는 등 ‘사설 채널’을 가동한 데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는 분석이다. 실제 조문단이 오기 전 정부의 한 당국자는 “그들은 사설 조문단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또 북핵 문제에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북측이 면담을 제안했다고 해서 덥석 만나는 것은 그간 정부가 표방해온 대북정책 기조에도 맞지 않고 보수 진영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고민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대북 공조 문제도 감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 7일 만에 체류를 5번이나 연장한 끝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점도 고려 요인이었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정부 내 의견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북측에 제안할 청와대 예방의 형식과 내용을 검토한 뒤 북측에 다시 공을 넘기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 체류 하루 늦춘 뒤 ‘접견’ 형식으로
이 같은 신경전이 계속되면서 북한 조문단은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22일 오후 7시 현 장관과 조문단의 만찬에서 양측은 면담 방식과 내용 등을 최종 협의했다. 정부는 이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포함한 현 정부의 대북 원칙을 천명할 것이며 만남의 형식은 외국 조문단 접견의 하나로 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북측은 결국 이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찬이 끝난 뒤인 오후 9시 40분경 조문단의 ‘23일 오전 10시 15분간 청와대 예방’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23일 접견 일정은 오전 10시에서 9시로 당겨졌고, 접견 시간도 외국 조문단을 15분간 만난 것과는 달리 30분을 할애했다.
김 비서는 청와대 방명록에 “오늘도 바쁘시겠는데 우리 특사 조의 방문단을 만나주시어 감사합니다. 앞으로 북남관계 개선에서 획기적인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김 비서는 청와대 예방을 마치고 숙소인 그랜드힐튼호텔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다 잘 됐다. 좋은 기분으로 간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