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속 운구행렬 300m… 서울광장 1만7000명 추모

  • 입력 2009년 8월 24일 02시 50분


■ 운구-안장식 이모저모

김대중도서관 들른 영정
서재 의자위서 잠시 휴식
광화문광장 분수도 멈춰 예우
묘역 도착후 헌화 뒤 안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이 열린 23일 오후 운구 행렬은 국회 영결식장을 떠나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동교동 사저, 세종로 사거리, 시청 앞 서울광장, 서울역 등 서울 시내 곳곳을 돌아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휴일을 맞아 시내 곳곳에는 시민들이 운구 행렬을 지켜보며 고인을 애도했다.

○ 눈물의 성가, 동교동에 울려 퍼져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는 오후 3시 반 국회를 빠져나와 5분 후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 잠시 멈췄다. 이희호 여사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를 만나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후 운구 행렬은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로 향했다.

운구 행렬은 경찰 사이드카 28대, 선도차, 영정을 부착한 무개차(오픈카)가 앞에 섰으며 운구차, 유족을 태운 승용차와 경호차량, 버스 7대가 뒤따르는 등 300여 m에 달했다. 경찰이 이동구간의 교통을 통제해 운구차량은 시속 30km 속도로 원활히 이동했다.

오후 3시 47분경 운구 행렬이 동교동에 도착하자 인근 도로에 있던 주민 300여명이 엄숙한 표정으로 영구차를 맞이했다. 김 전 대통령이 다녔던 서교동성당 성가대 단원들이 골목에 도열해 추모성가를 불렀다. 맏손자 김종대 씨가 영정을 들고 앞장선 가운데 이 여사와 아들 홍업 홍걸 씨, 박지원 의원,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등 일행은 동교동 사저와 사저 옆 김대중도서관을 둘러봤다. 영정은 서재와 집무실에서 고인이 사용하던 의자 위에 잠시 올려지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목포상선 사장이었을 때 그를 본 적이 있다는 동교동 주민 조모 씨(75·여)는 “슬퍼서 그 어떤 배웅의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며 흐느꼈다.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 서거 뒤 저서 ‘동행’에 쓴 ‘마지막 편지’를 바탕으로 한 안숙선 명창의 조창(弔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오후 4시 5분 운구 행렬은 동교동을 나섰다.

○ 도로마다 시민들 애도

김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이후 충정로와 서대문을 지나 세종로 사거리로 향했다. 운구차량이 광화문광장을 지나기 전인 오후 4시 15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광화문 분수의 가동을 20분간 중단했다. 분수가 멈추자 광장에 있던 부모들은 운구 행렬을 지켜보기 위해 물줄기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광장 남쪽으로 모여들었다. 오후 4시 27분경 운구 행렬이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 서울광장으로 향하자 광화문광장에 있던 300여 명의 시민은 질서 유지선 앞쪽에서 까치발을 하며 행렬을 지켜봤다.

이어 운구차량은 추모제가 열린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서울광장에는 오후 1시 반부터 추모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후 운구차량 도착 전까지 추모시 낭독과 김 전 대통령이 즐겨 봤다는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인 배우 오정해 씨가 ‘꿈이로다, 꿈이로다’ 라는 만가(輓歌)를 부르는 등 추모제가 이어졌다. 시민들은 땡볕이 내려쬐는 가운데에도 광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으려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운구 행렬이 오후 4시 반경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이 여사는 시민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잠시 차에서 내렸다. 일부 시민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5분 후 운구 행렬이 떠나자 시민들은 노란색 풍선을 하늘로 날렸다. 시민 1000여 명이 차도로 내려와 행렬을 따라가려고 했으나 경찰은 이들을 다시 도로 위로 올라가도록 했다. 이날 서울광장에는 1만7000여 명(경찰 추산)의 시민이 모였다. 운구 행렬은 서울역 광장에 잠시 멈춘 후 동작대교를 건너 안장식장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으로 향했다.

○ 고향 하의도의 흙, 관 위에 뿌려져

운구 행렬은 오후 4시 50분경 국립서울현충원 입구에 도착했다. 묘역은 현충원의 국가유공자 제1묘역 하단부에 봉분과 비석, 상석, 추모비 등을 합해 264m²(약 80평) 규모로 주변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묘소가 있다.

운구 차량이 오후 5시 묘역에 도착하자 의장대 운구병 10여 명이 영정과 영면관을 안장식장 내 제단으로 옮겼다. 영면관은 태극기로 싸여 있었다. 안장식은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하관, 허토(흙을 관 위에 뿌리는 의식) 순으로 진행됐다.

이 여사 등 유족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 한명숙 전 총리 등의 헌화가 이어진 후 제단에 있던 영면관은 묘소 예정지로 옮겨졌다. 운구병들은 관에서 태극기를 걷어낸 후 접어 이 여사에게 전달했다.

오후 6시 7분 깊이 180cm의 땅속으로 관이 들어가자 유족은 눈시울을 붉혔다. 순간 군악대도 연주를 멈춰 묘역 전체에 적막감이 흘렀다. 하관 후 관 위로 무궁화, 봉황 무늬가 새겨진 나무판 7개가 덮였다. 이 여사가 전달받은 태극기도 다시 관 위에 올려졌다.

하관이 끝나자 허토 의식이 계속됐다. 유족이 관 위에 하얀 카네이션을 뿌린 후 다시 삽으로 흙을 퍼 관 위에 뿌렸다. 휠체어에 앉은 홍일 씨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손만 살짝 삽 위에 올린 채 흙을 뿌렸다.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가져온 흙 한 줌도 함께 뿌려졌다. 허토 내내 찬송가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가 흘러나왔다. 유족은 오후 6시 반경 묘역을 떠났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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