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좋다며 혼자 3인분도” DJ단골식당 주인들의 회고담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8월 20일 14시 22분



쫄깃한 참복에 미나리 콩나물이 아삭아삭 씹혔다. 냄비에 담긴 얼큰한 국물이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대식가로 유명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물이 참 담백해서 좋다"며 이 집 복어매운탕을 혼자서 3인분씩 들었다고 한다. 서울 여의도에서 야당을 하던 시절 김 전 대통령은 옛 민주당사 건물 지하에 있었던 '부산복집'이라는 식당을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찾았다. 1997년 대선 후보자 시절 비서들과 함께 이곳을 자주 찾았고 대통령 재임 때에는 청와대에서 사람을 보내 포장을 해 가기도 했다.

16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식당 주인 신영숙 씨(55·여)는 19일 이제는 고인이 돼버린 김 전 대통령이 예전에 올 때마다 앉았던 자리를 매만졌다. 1971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쳤던 김 전 대통령은 방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기가 불편했다. 11년 전만 해도 이 식당에는 좌식테이블이 놓인 방과 훤히 트인 홀 밖에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이 식사하러 오실 것"이라고 비서가 전하면 식당에서는 급히 낮은 식탁에 다리를 붙여 높게 만들고 의자를 들여놓는 등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우곤 했다. 그러다 아예 김 전 대통령이 편히 식사할 수 있도록 탁자와 의자를 들여놓은 방을 따로 만들었다.

"항상 이 자리에서 복어매운탕을 맛있게 드셨었는데." 주인 신 씨에게 각별한 이 자리는 인기가 많다.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이곳을 찾지 못했는데도 "대통령님이 앉아 식사하시던 자리가 어디냐"며 일부러 멀리 지방에서 '순례'를 오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신 씨는 김 전 대통령을 조용하지만 잔정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식사 자리에서 비서가 어느 정치인이 총재님에게 이러저러한 말을 한 게 신문에 나왔다고 해도 화 한번 내지 않으셨어요." 말 잘하는 정치인으로 유명했던 김 전 대통령은 "그래, 됐다"하고 조용히 숟가락만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평소 말수가 적었지만 주위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잔정이 많았다고 한다. 신 씨는 "복어 매운탕 냄비가 끓으면 손수 그릇에 매운탕을 떠 비서들부터 챙겨주곤 하셨다"며 "워낙 대단한 분이라 말도 못 붙일 것 같았지만 알고 보니 참 따뜻하고 다정한 분"이라고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이 던졌던 재치 있는 농담도 신 씨 기억에 남아있다. 한번은 종업원이 음식을 나르다 국물을 쏟자 "나가(내가) 먹어도 되는데 아깝게 탁자에 줘버렸다"며 당황한 종업원을 달랬다고 한다.

평소 건강관리에 무척 신경을 쓰고 절제했던 김 전 대통령은 식사를 할 때에도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신 씨는 "맥주 한 잔 하신 것 빼고는 술 드시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술이나 담배는 피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즐겁게 먹어서인지 항상 건강하고 힘이 넘치셨다"고 말했다.

1997년 대선 때는 대권도전 4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이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 당사가 있었고, 지금은 한나라당 당사가 입주해 있어 여의도 안에서 '정치명당'으로 꼽히는 H빌딩 지하에 자리 잡은 이 식당에는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다. 신 씨는 그 중에서도 자주 이곳을 찾았던 특별한 단골로 김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우리 집 음식을 좋아하셨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시게 돼 마음이 더 아픕니다. 민주당 시절에는 두 분이 같이 오실 때도 많았지요." 그는 "김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 좋아하시던 복어 매운탕 한 그릇 끓여드리지 못한 게 아쉽다"며 빈 자리를 매만졌다.

전남 목포시 유달동에 있는 한정식집 '옥정'도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식당 중 하나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손성애 씨(56·여)는 "김 전 대통령께서 2006년 10월 29일 목포 방문 때 이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셨다"면서 "홍어삼합과 낙지, 간재미초무침 등을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손 씨와 김 전 대통령의 인연은 각별하다. 김 전 대통령이 목포에서 첫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당시 목포 이로초등학교 4학년이던 손 씨는 그의 목에 직접 꽃다발을 걸어드린 일이 있었다. 올해 4월에는 김 전 대통령이 전남 영암의 한 호텔에서 묵을 때 김 전 대통령 측근의 부탁으로 야식을 준비해 갖다 드리기도 했다.

손 씨는 "김 전 대통령과 꽃다발 얘기를 나누며 함께 웃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더 이상 그 분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면서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한다"며 울먹였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목포=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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