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北에 농업기술-인프라 도와줘 자립하도록 만들어야”

  • 입력 2009년 7월 14일 02시 56분


현금-식량 직접지원 방식 재검토

北개방-투명성 강화 압박 나설듯

“지원금 핵무장 전용 의혹제기… 北회담 나오게 하려는 전략”

유럽 3개국을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현행 대북 지원 및 거래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달아 내놓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식량 등 현물 지원과 경제협력에 따른 달러 지급에 대한 문제제기로 들린다. 특히 국제사회가 지원한 현물과 달러를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등에 전용(轉用)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정부의 정책 변화가 주목된다.

현물 지원과 달러 지급은 문제

이 대통령은 13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그랜드호텔에서 수행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북한에 대한 현물 지원 방식을 개발원조(현물을 직접 주는 대신 생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식)로 바꿀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대통령은 주요 8개국(G8) 확대정상회의 식량안보세션에서 느낀 점을 설명하며 “(북한에) 식량 지원보다는 뭔가 자급할 수 있는 쪽으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12일 스웨덴 교민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이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비료와 식량을 준다고 남북관계가 잘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우리는 기반시설을 깔아주고 기업 투자로 북한을 더 빨리 발전시켜 상당한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면 한국은 세계와 손잡고 북한에 농사짓는 법, 세계와 경제교류하는 법을 전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7일 유로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남한 지원금의 핵무장 전용’ 의혹을 지적한 경위도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을 도우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무장으로 대응했다고 얘기한 것”이라며 “강하게 얘기해서 북한이 회담에 나오도록 하는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대북 달러 지원과 전용 문제를 공론화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북한 당국의 전용 방지 대책 나오나

현재의 현물 지원과 달러 지급 방식의 문제는 ‘나쁜 국가’를 약화시키고 ‘착한 국민’을 강화시키기 위한 외부의 수혈을 국가가 가로채 정반대의 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대북 개발원조 방식과 경협 대가 지급 방식의 변화는 ‘나쁜 전용’을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다수의 전문가가 주장해왔다.

▶본보 6월 29일자 A4면 참조 “남북경협 제도 개선” 전문가들 목소리 확산

북한 당국은 1995년부터 미국과 한국 등의 정부와 민간이 인도적으로 지원한 식량과 생필품 등을 시장에서 주민들에게 팔아 재정에 충당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개발원조 방식을 도입하면 북한 당국은 지원 물품을 전용할 수 없다. 북한은 개발원조를 받기 위해 지금보다 더 개방하고 지원 자금을 투명하게 운영해야 하며 국제사회의 감시를 더 받아들여야 한다. 남한이 경협 대금 지급 제도를 바꿔 달러 대신 원화를 주거나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을 당국이 아닌 근로자에게 직접 주면 북한 당국이 더는 이 돈을 WMD 개발에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정부 당국자들은 남북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장 제도를 개선할 수는 없지만 여건이 되면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개성공단에 지원하는 현금도 앞으로 연구 대상”이라며 “미국도 현금 지원을 못하겠다고 하는데, 한국에선 작년에도 5억 달러가량이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지원 관련 최근 발언

▶7일 유로뉴스 인터뷰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북한에) 지원했으나 그 돈이 북한 사회의 개방을 돕는 데 사용되지 않고 핵무장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있다.”

▶12일 스웨덴 교민 간담회

“남한으로부터 식량만 지원받고, 매년 식량을 받아야 하니 그때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국제사회는 이를 보상하는 관행이 되풀이되면서 북한은 발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13일 라디오 연설

“식량부족 문제는 지원으로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농업기술을 가르쳐 주고 물 문제를 해결하는 등 농업 인프라를 지원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모든 G8 참가국들도 동의했다.”

▶13일 스웨덴 수행기자단 간담회

“주요 8개국(G8) 확대정상회의에서 (식량안보와 관련해) 북한 얘기를 좀 하고 싶었으나 ‘핵무기, 미사일 만드는 나라가 무슨 기아냐’고 할까 봐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스톡홀름=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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