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씨 “정운은 대담-파격”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6월 5일 03시 00분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씨 인터뷰… “정운은 대담-파격의 대장동지”

“난 제트스키-스노보드 즐기는데… 인민은?”

10대중반부터 ‘말술’… 한번에 4, 5잔 원샷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가명·62) 씨가 북한을 탈출하기 한 달 전인 2001년 3월 어느 날이었다. 당시 18세인 김정운이 전화로 그를 불러냈다. “후지모토, V 하러 가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담배를 끊은 뒤 흡연이 금지된 원산초대소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러 가자는 암호다. 그는 북한에서도 가명으로만 불렸다. 두 사람이 김정운의 벤츠를 타고 농구장 뒤로 가서 담배를 피워 물었을 때 김정운이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여름이면 제트스키, 겨울이면 스노보드를 타며 즐겁게 지내지만 일반 인민은 어떻게 살까.” 후지모토 씨는 그 자리에서도 “대장동지(그는 김정운을 이렇게 불렀다), 인민을 그리 생각하다니 참 훌륭하십니다”라고 말했는데 진심이었다고 한다. “18세면 몸은 청년이지만 아직 아이 아닌가. 역시 지도자감이라고 생각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3년 동안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일하며 로열패밀리를 지근거리에서 접해 온 후지모토 씨는 2003년 북한에서의 경험을 담은 저서 ‘김정일의 요리인’을 냈을 때부터 김정운이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누차 장담해 왔다. 김 위원장 가족 곁에서 보고 들은 바로는 나이는 어리지만 김정운이 가장 뛰어난 재목이었다는 것.

“그때는 다들 내게 ‘바보 같은 소리’라고 했지만 이제 김정운이 후계자로 부상했다니 반갑다. 그러나 요즘 북한이 하는 것을 보면 그가 제대로 자리잡을 때까지 나라가 지탱이나 될는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베일에 가려진 ‘포스트 김정일’ 김정운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진 후지모토 씨를 4일 만났다. 그는 2001년 4월 ‘홋카이도(北海道)에 가 음식재료를 사오겠다’고 속여 북한을 탈출한 뒤 지금까지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외출할 때는 모자에 선글라스 차림이다. 휴대전화만이 그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다. 생계는 인세와 매스컴 출연료 등으로 이어간다. 이날 동아일보 도쿄지사 사무실로 찾아온 그는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는 간단한 한국말 대화가 가능하며 한글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읽을 줄 안다.

그가 전하는 김정운의 특징은 만능 스포츠맨에 통솔력 있고 호쾌한 성격. 김정일과 외모와 체형, 성격까지도 빼닮았다고 한다. 저서에 따르면 그가 김정운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1월, 북한 중남부 신천초대소에서 김 위원장이 부인 고영희와 김정철, 정운 형제를 북한의 최고위 간부들에게 선보이던 날이다. “당시 7세이던 김정운은 내가 일본인이라는 말에 째려보며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형 김정철은 선선히 손을 내밀었는데…. 그때의 강렬한 눈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18세 정운 ‘V하러 가자’ 불러내 김정일 몰래 담배 피워”

7세때 정운과 첫 만남…일본인이라며 째려보고 악수조차도 안해줘

13년간 ‘장군 연회’ 수백번…김정남 한번도 본 적 없어

美 올브라이트 특사 방북때 클린턴 친서 받은 김정일 “편지 받았다” 자랑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3년간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요리사로 일하며 김정일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온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가 4일 도쿄의 동아일보지사 사무실에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후지모토 씨가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운이 후계자로 결정됐다는 본보 2일자 기사를 꼼꼼히 읽고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 사진 더보기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3년간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요리사로 일하며 김정일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온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가 4일 도쿄의 동아일보지사 사무실에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후지모토 씨가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운이 후계자로 결정됐다는 본보 2일자 기사를 꼼꼼히 읽고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 사진 더보기

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고영희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고 신뢰도 두터웠다. 고영희는 자녀들을 데리고 유럽이나 도쿄 디즈니랜드 여행을 몇 차례나 다녔다고 한다.

“김정철과 정운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딴판이었다. 김정철은 할아버지인 김일성이나 고영희의 체형을 물려받아 키가 크고 비교적 날씬한 편이었으나 김정운은 어렸을 때부터 포동포동한 체격에 근육질로 보였고 키가 많이 클 것 같지 않은 체형이었다. 김정철은 술도 약하고 여자 같은 성격이었지만 김정운은 김정일 판박이였다.”

그에 따르면 북한 고위층에서 김정남은 아예 논외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13년 동안 ‘장군의 연회’에 수백 번 가봤지만 단 한 번도 김정남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북한을 탈출한 지 한 달 만인 2001년 5월 김정남이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체포됐다. 그때 처음으로 TV를 통해 김정남의 얼굴을 제대로 봤을 정도다.” 당시 일본 경찰청으로부터는 “어이, 후지모토, 당신 데리러 김정남이 북한에서 왔더라”는 농담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그 뒤 정운은 스위스의 국제학교에 다니기도 했지만 몇 달에 한 번은 귀국했고, 장군 주최 연회에도 자주 참석해 친해졌다. 미성년자인데도 술 담배를 하는 등 파격과 위반을 거침없이 하는 김정운의 성격은 후지모토 씨와도 잘 맞았다.

이런 그가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김정운과의 마지막 대화다. 북한을 탈출하기 보름 전쯤 후지모토 씨는 낙마사고를 당했다. 걱정하며 찾아온 김정운은 “후지모토, 이번에 일본에 가더라도 다시 돌아올 거지?”라고 물었다. “반드시 돌아와 다시 대장동지와 말을 타겠습니다”라고 답하자 김정운은 그를 굳게 포옹했다고 한다. “그날 밤 꿈에 일본의 료칸(旅館)에서 음식 준비를 하는데 김정운이 나타나 ‘어이, 후지모토, 공화국에 돌아가자’고 말해 놀라서 깼다.”

김정운은 술이 세서 10대 중반부터 주종을 막론하고 한 번에 4, 5잔은 들이켰다. 영화도 좋아해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거의 다 봤다. 초대소 안에서 여는 농구 경기가 끝나면 반드시 ‘반성회’를 갖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것은 꾸짖으며 독려했다는 에피소드는 그의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후지모토 씨는 북한의 실정상 김정운이 정식 후계자로 공표되는 것은 한참 뒤일 거라고 말했다.

“26세면 북한에서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기쁨조나 군대에서도 30세가 돼야 결혼할 수 있다. 내부에 후계자로 공표를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는 향후 북한의 정치구도에서 장성택을 ‘키 인물’로 꼽았다. 그에 따르면 장성택은 북한의 확고한 ‘넘버 2’로 누구도 거역하지 못한다는 것. 장성택이 김정운의 후견인 역할을 해준다면 김정운의 승계는 확고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다만 김정운이 30세가 되기 전, 아니 2012년 전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이번 핵실험은 대실패다. 북한이 크게 잘못 생각했다. 미국을 세 번이나 속이다니, 두 번까지는 통했지만 이번에는 어려울 듯하다.”

북한 고위층에서도 미국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하다는 게 그의 전언. 반면 매들린 올브라이트 특사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김 위원장이 무척 기뻐하며 “편지 받았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당시 벌어진 연회에서는 평소 한잔 마실 때마다 100달러로 시작해 100달러씩 올라가던 하사금이 처음부터 200∼300달러로 시작했다.

이런 그는 요즘 김 위원장의 야윈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내게 보통 사람이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누리게 해줬다. 일본에 돌아와 매스컴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무척 고민했지만 먹고살 길이 없었다. 매스컴이 보호막이 돼 신변안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다만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어이 후지모토, 다시 돌아와라’고 한다면 다시 한 번쯤 그를 위해 초밥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반, 기대 반의 상상이다.”

● 후지모토 겐지 씨는

1947년 일본 아키타(秋田) 현에서 태어나 도쿄 긴자(銀座)의 최고급 초밥집에서 요리를 익혔다. 1982년 8월 평양에 신설되는 일본식당에서 일할 요리사를 구한다는 말에 고액의 급료에 혹해 북한에 들어갔다. 1988년부터 김정일 위원장의 전속요리사가 돼 미식가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았다. 현지 여성과 결혼해 호화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수차례 식재료 등을 구입하기 위해 일본, 마카오,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했다. 2001년 4월 탈출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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