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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2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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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민주당대표 “與 강행처리땐 의원직 총사퇴”
국회가 법안 처리를 놓고 엿새째 파행을 빚은 가운데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2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임위원회 상정을 폭력으로 방해한 야당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한나라당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하지 않는다면 대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이 대화의 시한으로 정한 25일 이후 김형오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 상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제 민주당 시대가 갔다. 대선과 총선을 통해 국민이 내린 심판을 존중해 법도 그 뜻에 따라 바꿔야 한다”며 “임시국회 회기 내에 국회에 제출된 법안들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쟁점 법안들의 직권 상정 추진 여부에 대해 “대화가 안 된다고 아무 것도 못하는 정당이 돼서는 안 된다”며 “대화와 타협의 노력이 실패하면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다수결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다만 “대치 정국을 풀기 위해 25일까지 총력을 다해 대화하자고 제의한 것”이라며 “반대하는 법안이 있다면 대화를 통해 따져보자”고 대표 회동을 거듭 제안했다.
반면 정 대표는 국회 당 대표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이 박희태 대표, 홍준표 원내대표를 수시로 불러 지시하는 탓에 꼭두각시 정당이 됐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의회의 품격과 권위를 지켜야 할 김형오 국회의장도 자주성을 갖지 못한 채 직권상정 등으로 의장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은 더는 퇴로가 없는 상황”이라며 “만약 한나라당이 25일 이후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한다면 의원직 총사퇴를 포함한 모든 취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정상화 해법’ 여야 대표에 듣는다 ▼
《1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처리를 둘러싸고 시작된 여야의 강경대치 속에 주요 법안 처리를 위한 연말 임시국회가 정상화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국회의장실, 주요 상임위원회 회의장 점거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대화와 타협이 실패하면 다수결로 처리할 것”이라며 주요 법안의 강행처리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도 “한나라당의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 없이 어떤 대화도 있을 수 없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본보는 23일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 국회 파행 사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무작정 기다릴순 없어…민주주의 원칙 지켜야”
“靑과 교감 같은 것 없어…사과? 폭력쓴 쪽이 해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단독 상정에 대한 민주당의 사과 요구를 일축하며 “국민들로부터 심판받은 정책과 주장을 계속 고집한다면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한미 FTA 비준안 상정 과정에서 나타난 폭력 사태에 대해 국민의 실망이 크다.
“국민에게 죄송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꼭 그랬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비준안 처리도 아니고 단순히 상정일 뿐인데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막는 게 말이 되나. 한미 FTA는 노무현 정권이 체결한 것이고 17대 국회에서 특별위원회까지 만들어 1년 동안 논의했던 것이다. 또 당시 민주당이 직권 상정하지 않았나.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왜 상정조차 안 된다는 것이냐.”
―민주당은 사과를 요구하는데….
“정당한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한 것을 어떻게 사과하나. 오히려 폭력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한 쪽에서 사과를 해야지. 사과를 아무데나 하나. 잘못한 게 있어야 사과를 하지.”
―박 대표의 회동 제안을 민주당이 거부했다.
“저도 대화론자고 타협론자다. 그래서 대치 정국을 풀기 위해 한 발짝 물러나 25일 성탄절까지 휴전하고 대화하자고 제의한 것 아닌가. 이틀 남았지만 민주당은 대화에 응해 달라.”
―박 대표가 청와대와의 교감 아래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고 민주당은 주장한다.
“청와대와 뭘 교감하나. 독자적인 판단으로 당 지도부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고 있다. 정기국회가 다 끝나고 임시국회까지 소집해놨는데 또 시한이 다 돼 간다. 그 안에 정말 법안들을 처리해야 한다.”
―대화 시한으로 정한 25일이 지나면 어떻게 할 건가.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다. 최고중진회의와 의원총회를 통해 여러 의견을 들어보고 마지막 결심을 하겠다.”
―직권상정 수순을 밟겠다는 것인지….
“대화가 안 될 때를 대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 대화가 안 된다고 아무것도 못하는 정당이 되면 안 된다. 국민이 그러라고 표를 준 건 아니지 않느냐. 대화와 타협 노력이 실패하면 국회법과 다수결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점 처리법안 100여 개를 모두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에 처리하겠다는 것인가.
“적어도 그 정도는 통과돼야 경제난국을 타파하고 어려운 민생에 활로를 뚫을 수 있다. 중소기업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전부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야당과 논의해 타협점을 찾을 생각도 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민주당의 불신이 커진 것 같다.
“예산안 처리 때 한나라당은 매우 타협적인 태도를 취했다. 야당과 거의 다 합의가 됐다. 단지 284조 원 중 불과 1000억 원을 놓고 의견이 안 맞았다. 합의를 다 해놓고 마지막에 고집을 부리고 보이콧을 한 것 아닌가. 그런 자세는 좋지 않다.”
―경색된 여야 관계를 풀어낼 구체적인 구상은 있나.
“최대한 야당과 협의해 법안을 처리하겠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이념법안이 어디 있나.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좌경 정책은 대선과 총선을 통해 국민의 단죄를 받았다. 그랬으면 국민의 심판을 존중해 법도 바꿔야 한다. 국민은 자신들의 뜻을 받들라고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한나라당에 표를 준 것이다. 패배자가 자기주장만 고집하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민주당에 하고 싶은 말은….
“야당이 분배주의 관점에서 여러 가지 정책 주장을 하는데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했으니까 이제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곳에 조금 더 투자를 하면서 복지도 하자는 것이다. 민주당이 과거에 실패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은 정책과 주장을 고집한다면 새 길이 열리기 어렵다. 길게 보고 정책 노선도 재검토해야 한다. 여당에는 권력이 있고 야당에는 국민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을 했는지 되돌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일방적 최후통첩 오만…믿음을 줘야 대화 가능”
“대통령 개입으로 파행…또 무릎 꿇으라는건가”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야당이 지금보다 더 의석수가 적더라도 (거대 여당이) 일방 독주를 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며 “한나라당은 너무 오만하고,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처럼 졸부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 파행 정국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개입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지난 10년 동안 의회주의가 신장돼 왔는데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를 수시로 불러 지시하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라도 중립적으로 의회의 품격과 권위를 지켜야 하는데 직권상정 등으로 동조하고 있다. 이런 불신이 어우러져 현 상황을 만들었다고 본다.”
―한나라당이 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단독 상정했고 이어 주요 쟁점 법안들을 강행 처리하려 한다고 보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입각 등을 위해 벌이는 충성 경쟁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과도한 의석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담을 느끼는 데서 문제가 출발한 것 같다. 172석의 거대 여당으로서 무엇이든 일사천리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의석수와 상관없이 대화와 타협으로 공존해야 한다.”
―파행 국회를 해소할 방법은 무엇인가.
“여당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뿐이다. 박 대표나 홍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김 국회의장도 다시는 직권상정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야당에 줘야 한다. 1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사태는 명백히 우리가 위해를 당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가해를 했으면 그에 대해 입장 천명을 해야 서로 대화가 가능한 것 아니냐. 하지만 지금도 ‘25일까지 대화’라는 최후통첩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최후통첩에 우리가 무릎을 꿇으라는 말이냐.”
―만약 한나라당이 주요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아직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의원직 총사퇴 등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검토할 것이다.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18일 외통위에서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봉쇄하고 의정활동 권한을 박탈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저들의 일방 독주를 묵인하든지, 아니면 물리적으로 깰 것인지 양자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이 또 그렇게 한다면 똑같이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무슨 소리냐. 9월 외환위기설이 전국적으로 유포됐을 때 내가 당내 비난을 받으면서도 ‘9월 위기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실제로도 안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때도 반대 태도는 분명히 했지만 실력 저지는 하지 않았다. 또 1000억 달러의 정부의 은행 지급보증동의안도 신속히 처리했다. 이렇게 도와준 야당이 또 있느냐.”
―김형오 의장의 중재 제안을 거부했는데….
“(김 의장이 밝힌) 직권중재는 사용자와 노동자에게 하는 말이다. 한나라당이 사용자고 우리가 노동자인가. 어느 법이 의장에게 그런 권능을 부여했나. 법에도 없는 권한을 행사하겠다는데 누가 납득할 수 있나. 국회의장은 (현 상황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김 의장이 여당의 부당하고 부적절한 직권상정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에게 준다면 지금과는 다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 의장은 그런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다.”
―박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박 대표는 경륜이 높은 원로 정치인이다. 그러면 후배들을 잘 지도해서 의회주의가 살아나도록 해줘야 한다. 후배들하고 똑같이 그러면 어떡하나. 적어도 지난 10년간은 의회가 행정부의 시녀다, 통법부다 하는 말은 없었다. 박 대표는 (청와대에) 국회를 통법부로 만드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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