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대표 릴레이 인터뷰]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2시 59분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2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해 3월 청와대가 쌀 직불금 문제와 관련해 직접 감사를 지시했다는 이 날짜 본보 보도에 대해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감사원에 감사를 지시했다면 그 자체가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박경모 기자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2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해 3월 청와대가 쌀 직불금 문제와 관련해 직접 감사를 지시했다는 이 날짜 본보 보도에 대해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감사원에 감사를 지시했다면 그 자체가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박경모 기자
“금융위기는 신뢰의 문제…정부 정책 트집잡지 말아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20일 1시간 30분에 걸친 인터뷰 내내 쌀 소득보전 직불금 문제와 금융위기 해법, 북한 핵 문제 등 최근 불거진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해 ‘법’과 ‘보수’의 관점에서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 18대 국회 첫 국감에서 최대 이슈로 부상한 직불금 문제에 대한 견해부터 들었다. 그는 김영삼 정부 초대 감사원장(1993년 2∼12월)을 지냈다. 》

[직불금 파문]

직불금 정쟁 말고 국정조사로 개선책 모색을

수령자 명단 공개는 억울함 없도록 신중해야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지난해 3월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 감사원 감사가 실시됐다고 한다.

“행정부가 감사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국무총리가 요건을 갖춰 하도록 돼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이를 제외하곤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직무와 관련해 감사원을 지시 감독할 권한이 없다.”

―감사 결과가 확정되기 전에 감사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것은 어떻게 보나.

“제가 감사원장으로 있을 때는 사전 보고를 한 일이 없고 사전에 감사 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

―감사원이 비공개 결정을 하고 원 데이터를 폐기했는데, 그런 사례가 있나.

“어떤 이유로 비공개했는지가 중요하다. 정치적 이유로 숨기려고 했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정부 문서는 일정 기간 지나면 폐기할 게 있고 영구 보존할 게 있는데…. 자료를 폐기했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한나라당은 대선 기간이었으니 정치적으로 은폐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는데….

“직불금 문제는 국민, 농민의 마음을 굉장히 상하게 한 일이고, 액수도 적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집행돼 온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파헤쳐서 제도적으로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문제가 풀릴 수 없다. 여야 모두 정쟁거리로 삼지 말고 제대로 진실을 밝혀 개선책을 내놓기 위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공직자의 징계는….

“직접 경작을 안 했는데 속여서 돈을 타 갔다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단순히 토지 소유자로 돼 있다는 이유로 명단을 모두 공개해 발표하면 자칫 잘못이 없는 사람도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조사된 뒤에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제도 쪽으로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감사원이 대통령에 속하지만 직무상 독립지위를 갖는다는 것은 강력한 조항이다. 감사원장이 ‘법대로’ 하면 문제가 없다. 감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해도 다수당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경제 위기]

외화 지급보증-증시 안정화 대책 내놔 다행

경제팀 신뢰 잃었지만 바꾼다고 해결 안돼

―정부가 은행의 달러 차입난을 해소하기 위해 국내 은행의 외화 채무를 3년간 지급보증하기로 했는데….

“이번 금융위기의 본질은 은행이 은행을 믿지 못하고 돈을 빌려주지 않는 신뢰의 문제이고 유동성의 문제다. 평소에 잘 운영되던 금융기관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재빨리 금융기관 지급보증과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우리는 경제체질이 튼튼하다고, 왜 금융위기를 부추기느냐고 외국 언론에 항의하며 버텼다. 제가 빨리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는 데 그런 점에서 은행 외화차입 지급보증과 주식시장 안정화 대책, 중소기업 지원대책 등의 조치가 나온 것은 다행이다. 정부 정책을 트집잡지 말고 지체없이 (국회가) 동의를 해줘야 한다.”

―신뢰 회복을 위해 강만수 경제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강만수 경제팀이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건 사실이다. 경제 전문가나 기업인들에게 물으면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금융의 신뢰 회복은 정부의 지급보증, 유동성 공급 등 실제적 행동으로 해야 한다. 강만수 팀을 바꾼다고 신뢰 회복이 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시장에서 워낙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는 본인들이 (거취 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경제부총리 제도 신설도 같은 맥락인가.

“우리는 걸핏하면 제도를 탓한다. 과거 경제부총리가 있을 때도 감투를 쓰고 제대로 못한 적이 있다.”

―은행과 기업의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대신에 그 보증이 현실화됐을 때는 은행의 일정 주식이나 지분을 국유화하는 식의 분명한 책임 부담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들이 혜택을 보자고 한 거지만 은행이 키코(KIKO)라는 상품 자체를 굉장히 교활하게 만들었

다는 말을 듣고 있다.”

―금산분리와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규제개혁에 대해….

“보수 쪽에서 금산분리 완화와 출총제 폐지를 대표적인 경제정책으로 들고 나오는데, 출총제는 폐지해야 하지만 금산분리 완화는 아직 시기가 아니다. 기업이 은행을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거나 기업이 부실화됐을 때 은행 부실까지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북핵]

北미신고 핵시설 방치한건 부시의 실수

핵폐기 원칙 분명히 내세워 美끌고가야

―북-미 핵시설 검증 방식 합의 및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어떻게 보나.

“북핵 폐기로 갈 수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기 말에 굉장한 실책을 저질렀다고 본다. 임기 내 실적 내지 성과를 위해 너무 서두른 나머지 북한의 전형적 벼랑 끝 전술, 살라미 전술에 말려든 것 아니냐. 신고 시설과 미신고 시설을 구분한 게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이다.”

―우리 정부는 한미 간 긴밀한 협의가 있었다고 했는데….

“한미 간 협의가 있었다면 전적으로 우리 정부의 잘못이다. 사전에 알았다면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차 핵실험 정보가 있었다고 한다.

“핵실험 징후가 있었을까 싶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핵실험을 하는 것과 미신고된 핵시설에 대해 접근을 못하게 되는 것 중 어떤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국제사회에서 두들겨 맞고 북한에 대한 경계와 위협의식이 높아진다. 그만큼 북한에 불리한 것이다. 미신고 핵시설을 검증할 수 없다는 게 더 중요한 문제다.”

―정부로서는 한미 공조를 강조하다 보니 한미 간에 엇박자가 나는 것처럼 비치는 게 부담스러웠던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북핵폐기와 남북문제에 있어서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세우고 미국을 설득하고 끌고 가야 한다. 물 샐 틈 없는 공조라는 말에 취해서 미국에 반대하면 안되고 무조건 동조하고 따라가는 게 한미동맹을 복원하는 것이고 긴밀한 한미 협조라고 생각하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미국이 잘못한 것도 따라가 주고 협력해주는 게 한미동맹이 아니다. 북핵 문제에 대해 분명한 철학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미국 대선이 11월 초에 있는데,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대북정책에 있어서 우리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풀어야 할 외교적 딜레마라는 지적이 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정권을 잡기 전에는 더 강경할 것이라거나 유연할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막상 보면 비슷비슷해진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도 어떤 변화가 있을지 분명히 말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게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우리의 철학과 원칙이다. 북핵은 어떤 경우에든 폐기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간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조율해나갈 수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북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당연히 상황별로 대응 플랜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군사적으로 준비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논의가 돼 있어야 한다. 과거의 이념적 편향에 사로잡혀 준비를 한정하지 말고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개헌]

‘단임→연임제’ 쩨쩨한 개헌은 하나마나

나라 쪼개 ‘지역마다 뛰는’ 국가개조 필요

―전국을 5, 6개의 광역단위로 나누는 강소국 연방제로의 국가 개조를 주장하는데….

“이제 중앙 집권식으로 에너지를 결집시켜서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런 식으로는 중국 13억 인구에서 추려지는 많은 인재를 당할 수가 없다. 나라를 쪼개 지역마다 뛰도록 하자는 게 강소국 연방제다. 싱가포르가 좋은 사례이고 일본, 프랑스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국론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그런 측면도 있다. 단지 단임제를 연임제로 바꾸는 정도의 쩨쩨한 개헌을 할 바에는 헌법을 건드리지 않는 게 낫다. 개헌 논의가 현실 정치를 바탕으로 옹졸하게 이뤄져서는 안 된다. (국가 혼란을 줄이기 위해) 강소국 연방제를 특정 지역만 우선 실시하든지,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방법도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보수 노선을 제대로 견지하고 있다고 보나.

“보수다운 분명한 철학과 원칙이 보이지 않고 흔들리기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다. 10년 만에 보수정권으로 바뀌지 않았나. 이 정권이 희미하고 제대로 못해서 국민들이 ‘보수가 뭐 이래’ 하고 생각하게 되면 5년 뒤 좌파정권으로 다시 바뀔 수 있다. 이를 걱정하는 것이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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