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작년초, 대선후 문제될 사안 취합

  • 입력 2008년 10월 20일 02시 56분


작년3월 靑서 직불금감사 직접지시 파문

문제 사안 8, 9건 리스트 작성… 퇴임후 대비책인 듯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6월15일 靑서 감사원 보고받아

감사원 7월26일 비공개 결정뒤 수령자 리스트 폐기

감사원의 쌀 소득 직불금 실태 감사는 청와대가 지난해 3월 감사원에 직접 지시해 실시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는 노 대통령 임기를 1년 앞둔 지난해 초 정권 교체 후 문제가 될 사안을 부처별로 취합했으며, 이 가운데 쌀 직불금 문제가 포함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가 쌀 직불금 문제의 심각성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청와대와 감사원이 모종의 협의를 통해 이례적으로 감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19일 “지난해 초 대통령경제정책비서관실 주도로 각 부처에서 청와대에 파견 나온 공무원들로부터 대통령 임기 후 각 부처에서 문제가 될 현안 정책들을 취합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리스트에 쌀 직불금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포함돼 있었으며, 이런 사항을 바탕으로 청와대가 지난해 3월 초 감사원에 실태감사를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현안 리스트에는 쌀 직불금 문제 외에도 7, 8건이 더 있었으며 청와대는 이를 모두 감사원에 통보해 감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현안 리스트를 만들어 감사원에 통보한 것은 정권 교체에 대비해 나중에 새 정권에 공격할 거리를 주지 않으려는 노무현 대통령 임기 후 대비책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청와대에서 넘겨받은 리스트를 상반기 감사 대상과 하반기 감사 대상으로 구분했다. 이 중 쌀 직불금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3월 21일 예비조사를 시작한 뒤 4월 16일부터 5월 15일까지 23명의 감사인력을 투입해 감사를 벌였다. 감사원은 당초 9월부터 감사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앞당겼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감사원에서도 120조 원이나 투입되는 농업구조개선사업에 대한 감사계획을 이미 갖고 있었던 상황이어서 청와대의 요청을 감안해 감사계획에 포함시켰다”고 해명했다.

감사원은 그 후 지난해 6월 15일 이호철 대통령국정상황실장에게 감사 결과를 보고했다. 당시 보고는 이 실장이 감사원에 직접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는 하복동(현 감사위원) 감사원 제1사무차장과 정창영 산업환경감사국장 등 감사원 직원 4명이 했다. 청와대에선 이 실장과 담당 행정관이 배석했다는 후문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작년 6월 15일 감사 결과를 보고했을 때 이 국정상황실장은 ‘내 이렇게 엉망일 줄 알았다.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겠다’며 상당히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앞서 농림부는 2006년 말 이 국정상황실장에게 “임차인의 의사에 반한 임대인(지주)의 일방적인 직불금 수령은 없다”고 보고했다.

당시 쌀 직불금 제도에 문제가 없다는 농림부 보고만 믿고 있다가 감사원 감사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이 국정상황실장은 노 대통령에게 직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5일 뒤인 6월 20일 집무실에서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 박홍수 농림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농정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김조원 감사원 사무총장은 감사원의 쌀 직불금 감사 결과를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감사원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7월 26일 감사위원회를 열어 직불금 감사 결과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한 뒤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경작 직불금 수령자 17만여 명의 데이터를 전량 폐기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이훈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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