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박희태 대표 vs 정세균 대표

  • 입력 2008년 7월 9일 03시 00분


“정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당내에는 화합을, 국민에게는 신뢰를 쌓겠다. 국민이 한나라당을 믿도록 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국정현안에 대해 무한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임할 것이다. 국민들이 민주당을 대안으로 인정할 때까지 변화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정세균 민주당 대표)

최근 뽑힌 여야 새 대표의 취임 일성이다. 두 사람이 이런 초심을 지켜간다면 정치권을 천덕꾸러기 취급하고 있는 국민들도 마음을 바꿀지 모른다.

두 대표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정치의 복원이다. 두 달 넘게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 대의정치가 위기에 빠졌다. 18대 국회는 임기 시작 한 달이 지났지만 원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여야가 또다시 민심을 잘못 읽는다면 정치권 전체가 공멸할 것이다. 막힌 정국을 풀고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여야 대표 모두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자.

1996년 12월 26일, 여당이던 신한국당의 이홍구 대표는 김영삼 대통령의 뜻에 따라 여당 의원들을 꼭두새벽에 국회의사당으로 불러 모아 군사작전 하듯 노동법을 날치기 처리했다. 당시 이 대표는 날치기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대권 경쟁자로부터 “김 대통령이 위수령 발동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강수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동법 날치기 후 노동계 학계 종교계의 저항으로 김영삼 정부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 대표의 대권 꿈도 날아갔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잘못했다가 낭패를 본 대표적 사례다. 과반 의석의 힘을 과신했다가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박 대표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한나라당의 재집권 기반 조성도 박 대표의 과제 중 하나다. 이를 위해서는 야당을 소통의 상대로 인정하고 건강한 당-청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이번 지도부 개편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정체제가 강화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표가 청와대와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어야 대통령 친정체제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집권 10년 만에 야당이 된 민주당의 정 대표는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의 대표를 역할 모델로 삼아서는 안 된다. 과거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실질적인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공천권을 갖고 있던 DJ는 웬만한 당내 반대나 저항은 무시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89년 DJ가 지지자들의 뜻과는 달리 ‘노태우 대통령 중간평가 유보’에 동의했지만 반발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정 대표는 전임자인 손학규 전 대표의 충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손 전 대표는 “민주당 지지율이 10%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깝다. 민주당은 유능한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의석수의 열세 만회를 구실로 장외로 돌거나 몸싸움에 매달릴 경우 정권 탈환을 위한 대안정당으로 거듭날 수 없다. 386 출신 3명이 최고위원에 입성하면서 민주당이 강성으로 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 대표의 조정력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풍부한 의정 경험에 대화와 타협을 강조해온 박 대표와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한 합리적 성품의 정 대표.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리더십을 발휘해 상생의 정치를 이끌어가야 한국정치가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김차수 정치부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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