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급한 정부… 야당같은 여당… 국정 ‘소통 장애’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경제 추경-메가뱅크 등 조율보다 ‘힘겨루기’ 양상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둘러싼 정부와 여당 간 갈등,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 환율과 통화정책을 둘러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대립,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 논란,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이후 정부의 안이한 대처….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정책을 둘러싼 부처 간 갈등과 엇박자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내각 안에서 부처 간 협의 및 조정 채널이 삐걱거리면서 민간을 혼란케 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고위 공무원들 입에서 나올 정도다.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을 둘러싼 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간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 3월 말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적어도 아시아 10대 은행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소위 메가뱅크(강 장관은 ‘챔피언 뱅크’라고 표현) 방안을 제시했고 전광우 금융위 위원장은 산은의 단독 민영화 방안을 주장했다. 두 부처가 사전에 조율하지는 않고 대통령 앞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힘겨루기’를 한 것이다.

다른 부처의 발표 내용을 부인하는 해명자료를 내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달 25일 국무총리 주재 국가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에서 “연료소비효율 1등급 차량의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주차장 요금을 50% 깎아 주겠다”고 보고했다. 이튿날 국토해양부는 “협의된 적이 없다”며 자료를 냈다. 지경부 보고 내용은 결국 백지화됐다.

부처 내부의 ‘소통 부재(不在)’도 문제다. 청와대와 재정부는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극구 반대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4월 국회 상정을 포기하고 6월 국회에 추진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런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재정부 고위 당국자가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추경 재추진 사실을 외부에 발설했다가 강 장관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

부처 내부에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면서 대통령의 국정방향과 철학이 공무원들에게 제대로 전파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부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공무원은 새 정부가 성장과 물가 중 어떤 것을 중시한다는 건지, 혁신도시를 재검토하는 것인지 아닌지, 대운하를 추진하는지 아닌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부처 간에 통일된 방향의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숭실대 강원택(정치외교학) 교수는 “대통령이 혼자 모든 것을 챙길 수 없다”며 “청와대, 총리실, 부처 중 어느 쪽이든 확실한 조정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사회 쇠고기-교육대책 현장 의견수렴 부족 ‘삐걱’

교육 복지 노동 등 사회 분야에서는 부처와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이 나오는 만큼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법안과 액션 플랜을 만드는 과정에서 단기간인 성과 내기에 급급하기보다 관련 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관련해 광우병 괴담이 돌고 있지만 청와대와 부처, 또 부처 간 협조가 원활하지 못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국민연금을 담보로 대부를 받는 ‘뉴 스타트’ 정책을 3월 25일 발표했지만 보건복지가족부 공무원 대부분은 이를 알지 못했다. 8일 농림수산식품부와 복지부 명의로 ‘미국 쇠고기 안전하다’는 광고가 전 신문에 게재됐지만 복지부는 관련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한 공무원은 “청와대가 일방적인 ‘톱다운’ 방식으로 일한다”며 “의견을 건의해도 들으려는 자세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김용선 한림대 의대 교수의 논문이 지난달 29일부터 사회적 논란이 됐지만 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1주일 뒤에야 논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교육 분야도 충분한 정책 논의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어 공교육 강화의 당위성에는 찬성하지만 의견 수렴이나 논의 절차가 생략돼 출발도 하기 전에 실패한 정책으로 꼽히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교원평가제 도입과 지역교육청 개편을 교육개혁의 핵심으로 보고 18대 국회 개원과 함께 강력하게 추진해 연내에 마무리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정부와 교원단체, 교육전문직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이어서 여론 수렴을 소홀히 할 경우 저항세력을 양산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또 행정안전부가 2월 정부조직을 개편한 지 두 달도 안돼 또다시 대국대부(大局大剖) 체제로 개편하려는 방안도 부처 협의가 없어 잡음을 내고 있다. 가뜩이나 공무원들이 위축된 상황에서 또다시 조직을 축소하는 것에 대한 공직사회의 불만이 높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외교 한미동맹 강화 틀… 국익실현 각론 미완성

새 내각의 통일·외교·안보 라인은 정부 출범 이후 75일 동안 각 부의 정책 목표를 수립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찾는 데 부심하고 있는 단계다. 하지만 앞으로 국익 증진을 위해 서로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고 소통의 구조를 만들어 나갈지를 좀 더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미동맹 강화에 따른 미국의 요구와 국익을 조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한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등을 요구하고 있다.

통일부의 새 대북정책은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햇볕정책’에 대한 반성 위에 세워졌다. 국민의 합의에 기초하지 않은 일방적인 대북 지원은 하지 않고 경직된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고 남북관계를 한국이 주도하겠다는 것. 국방부도 지난 10년 동안 같이 안보를 책임지는 군이 북한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방인 북한은 이에 반발해 당국 간 대화를 중단하고 대남 비방과 군사적 시위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교 안보 이슈에 대해 청와대와 내각의 협조체제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방미 기간이었던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 상설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고 제안할 때까지 주무 장관들이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외교 안보 부처의 경우 아직 본격적인 시험대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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