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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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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여야 협상이 18일 끝내 결렬됨에 따라 새 정부 출범을 비롯한 앞으로의 정치일정은 당분간 파행을 면치 못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은 이날 협상 결렬 직후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를 열고 향후 정부조직 개정안 협상과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통합민주당이 협상에 응할 것이라곤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정부조직 협상과 ‘장관 인사청문회’ 난항 겪을 듯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9일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당선인이 현 정부조직법 직제에 따라 조각(組閣) 명단을 발표했기 때문에 국회는 별도의 법 개정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는 정상적인 절차라면 다음 주쯤 열리는 게 통례이지만 여야가 합의할 경우 일주일 안에라도 마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협상 과정과 이 당선인의 조각 명단 발표 과정에서 민주당이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어 이 당선인 측이 기대하는 ‘이번 주 내 인사청문회 실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불법, 편법 인사청문회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태도여서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아예 막거나 불참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최재성 원내대변인은 “법 절차를 어기고 편법으로 임명한 내각을 국회가 인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온건론자였던 김효석 원내대표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 상황대로라면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완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25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총리 인사청문회’에도 불똥 가능성
일단 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별개 사안이다. 여야는 이미 20, 21일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기로 합의하고 준비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 당선인이 조각 명단을 발표한 이후에도 민주당은 “총리 인사청문회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예정대로 열리고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무난히 인준된다면 새 정부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만 새 인물로 바꾼 채 출범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야당 우롱’ ‘정당 정치 파괴’ 등 극한 반응이 나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 절차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인사청문회가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으면 한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도 당초 예정된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기 어렵다. 이 경우 국회 인준 때까지 ‘총리서리’ 체제가 이어지게 된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때 김종필 당시 총리 후보자에 대해 국회가 인준을 해주지 않아 무려 6개월 동안 총리서리 체제가 계속됐던 적이 있다.
총리 인준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가 찬성해야 통과되지만 한나라당의 현재 의석은 130석(전체 298석)으로 독자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협상 조기 타결되더라도 새 정부 ‘며칠’ 파행은 불가피
물론 민주당이 마음을 바꿔 한나라당과의 정부조직 개정안 협상에 응하고 어느 시점에선가 여야 합의가 이뤄진다면, 국회 본회의에서의 정부조직법안 처리→새 직제에 따른 장관 후보자 수정 발표→총리 후보자 및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총리 국회 인준→총리 제청으로 장관 임명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이는 이 당선인 측이 가장 바라고 있는 상황 전개이다. 일단 18일 조각 명단을 공개한 데에는 ‘새 정부 출범 분위기가 여론에 확산되면 민주당이 대세를 거스르기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는 게 인수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민주당 최 대변인이 “우리가 협상의 문을 닫을 수는 없다”며 협상 재개를 위한 일말의 여지를 남긴 점이 희망적이긴 하다. 하지만 최 대변인이 “인수위가 해명해야 한다. 이 당선인도 사과해야 한다”고 전제조건을 단 것을 보면 협상 결렬의 책임을 이 당선인 쪽으로 돌리기 위한 명분 쌓기용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다.
이번 주 중으로 정부조직 개정안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법안의 본회의 통과와 그에 따른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새 정부 출범 초기의 며칠 동안은 ‘장관 공백’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최대한 속도를 내면 2월 중에는 정상적인 행정부 구성이 가능할 수도 있다.
만약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난 시점에 여야 합의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돼 정부부처의 이름이 바뀔 경우 기존의 정부부처 장관 이름으로 진행된 인사청문회를 무효로 하고 다시 청문회를 개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려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이 헌정 사상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후에도 ‘파행 행정부’ 한동안 계속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을 받고도 20일 동안 청문회를 열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장관을 정식으로 임명할 수 있다. 그 시점은 3월 10일경이다.
문제는 새 정부가 출범하는 2월 25일부터 장관 임명이 가능한 3월 10일까지의 국정 공백이다. 이 당선인이 18일 발표한 장관 후보자들은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라도 정부 부처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이지만 어느 경우라도 파행은 마찬가지다.
첫 번째는 노무현 정부의 기존 장관들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계속 장관직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모양새는 아주 이상하지만, 노 대통령이나 이 당선인 중 누구도 이들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외형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의 장관들’이 국정을 이끌어가는 파행 행정부의 전형이다. ‘정권 교체’와 ‘이명박 정부’의 상징성도 큰 타격을 받을 게 뻔하다. 공무원들 또한 기존의 ‘법적인 장관’과 ‘장관 후보자’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게 뻔하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기존 장관들의 사표가 수리되고 차관의 ‘장관대행 체제’로 행정부를 꾸려가는 방안이다. 이 경우 차관들로 국무회의를 구성할 수 있느냐는 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인수위의 일부 관계자는 “국무회의가 며칠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국정이 올스톱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지만 헌법에 명시된 국무회의가 공전(空轉)하는 상황은 갓 출범하는 새 정부로서는 명예롭지 못한 국정공백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대통령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인사를 위한 직제개정안의 국무회의 심의 의결부터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새 정부 100일’ 허송세월할 수도
더욱 큰 문제는 국정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야 모두 정부조직 개정안 처리 문제를 총선에서의 유불리와 연결지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총선 이후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최악의 경우 이런 상황까지도 각오하고 있는 듯하다.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저녁 최고위원회의 직후 “(새 정부가 파행 출범하면) 국민이 한나라당에 안정 의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총선에서 심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18대 국회로 넘어간다면 그 시기는 일러야 6월이다. 최소한 3개월 이상, 새 정부 출범 후 가장 중요한 ‘출범 후 100일’이 허송세월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셈이다. 이 시기에 국가적으로 중요한 현안이 발생하면 국무회의의 법적인 기능에 차질이 생겨 국가적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