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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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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모(81·여) 씨는 젖은 눈으로 폭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소학교 때 박연폭포로 소풍을 왔어. 관음사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폭포에서 놀다 간 기억이 아직도 선해. 여기서 집까지 지금 혼자 찾아가라고 해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개성이 고향인 이 할머니는 스물한 살 때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한 뒤 60년 동안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살아생전 박연폭포를 다시 볼 줄은 몰랐다”고 했지만 5일부터 시작된 개성 관광 덕분에 고향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자식들이 여행 가고 싶은 데 없느냐고 물어보면 ‘개성 아니면 싫다’고 했어. 그런 개성에 간다고 해서 며칠 동안 떨려서 잠을 못 잤어.”
하루 평균 개성을 찾는 관광객은 300명 정도다.
관광버스 운전사들에 따르면 관광객 중에는 자식들과 함께 고향을 보러 온 실향민이 많다고 한다.
이날 관광객들은 개성 시내 ‘통일관’이라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통일관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개성백화점이 있고, 200m 떨어진 곳에 개성 주민들이 사는 주택가가 있다.
하지만 북측 관계자들은 관광객들이 통일관 주변을 벗어나는 것을 엄격히 막았다. 심지어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조차 금지했다.
관광을 마치고 북측 출입사무소에서 수속을 밟을 때 북측 군인들은 모든 관광객의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한 장 한 장 확인했다.
관광버스 운전사는 “고향 집이 바로 통일관 옆인데도 갈 수 없어 주저앉아 눈물만 흘리다 가는 어르신도 있었다”며 “그저 눈으로 보고 가야 하는 탓에 실향민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버스에 올랐다가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개성 관광은 남북 교류의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버스 차창을 사이에 두고 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남한 관광객과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하지만 실향민들이 한평생 가슴에 키워 온 그리움을 보듬어 주기에는 개성 관광은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한상준 사회부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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