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도용 배후’ 의혹만 남기고…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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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 522명의 명의를 도용한 사건 수사가 배후나 공모 세력을 거의 밝혀내지 못한 채 사실상 마무리됐다.

특히 경찰은 이 사건이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선거 캠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란 의혹만 부풀린 채 진실을 규명하지 못해 ‘부실 수사’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2일 명의 도용을 시킨 서울 종로구 의원 정인훈(45·여·구속) 씨와 정 씨에게 옛 열린우리당 당원 800여 명의 신상자료를 넘긴 대통합민주신당 종로구 지역위원회 소속 김희주(34·구속) 씨의 수사기록 일체를 검찰로 송치했다.

경찰은 송치 이후 정 전 의장 선거 캠프의 김모(37) 씨를 소환해 정 씨의 아들 박모(19) 씨 등 대학생 3명에게 시킨 ‘대리 서명 아르바이트’의 실체를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박 씨 등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 전 의장 캠프 사무실에서 본인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선거인단 명부와 같은 문서에 대리 서명을 했다”고 주장했다. 만약 선거인단 명부에 허위로 서명을 했다면 형법상 사문서 위조가 된다.

박 씨 등은 또 정 전 의장 캠프 측의 설명과 달리 자원봉사가 아닌 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진술했다.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수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정 전 의장 캠프의 김 씨는 경선 일정을 이유로 계속 경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다. 15일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끝난 이후에도 경찰이 참고인 신분인 김 씨를 강제 소환할 방법이 없어 캠프에 대한 수사가 계속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대학생 이모(18·여) 씨는 “정 씨가 정 전 의장 캠프 사무실에서 명의 도용에 사용한 명부를 가지고 나왔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으나, 경찰은 당사자들이 거부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에 대한 대질신문을 못하고 있다.

경찰은 또 정 전 의장 캠프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가 캠프 관계자들의 저지에 부닥쳐 실패한 뒤 관련 자료를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정 씨가 김희주 씨와 공모해 명의 도용을 했다는 경찰의 발표 내용도 석연치 않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아무런 직책도 없는 김 씨가 정 씨에게 명의 도용을 부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경선 흥행을 위해 순수한 의도로 명의 도용을 했다는 정 씨가 자신의 아들이 경찰에 검거됐는데도 도피한 데 이어 김 씨도 정 씨 검거 이후 달아난 점은 “배후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키우고 있다.

한편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이 마무리되더라도 명의 도용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온 만큼 검찰이 정 전 의장 캠프의 배후 개입 의혹에 대해 본격 수사를 벌일 경우 명의 도용 수사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관측이 많다.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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