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바뀔 때마다 언론상대 악역, 정권 하수인 멍에 못벗어

  • 입력 2007년 9월 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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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시절 신문 폐간… 유신때 기자 해직… 신군부때 언론 통폐합

국정홍보처는 정권 교체 때마다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홍보처는 한때 없어졌다가 다른 이름으로 다시 탄생하는 오욕(汚辱)의 역사를 반복했다.

이는 대국민 정책 홍보라는 기치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나팔수’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은 체제 선전, 언론 장악의 첨병으로 홍보처 등을 활용했다. 민주화 정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인사들도 정권을 잡은 뒤에는 언론 장악을 위해 홍보처를 정권 선전기구로 활용했다.

홍보처의 뿌리는 이승만 정권이 출범한 1948년 11월 설립된 공보처로 볼 수 있다. 당시 국영방송을 관리·통제하는 기구였던 공보처는 1956년 폐지됐다가 5·16군사정변 이후 공보부, 문화공보부, 공보처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1999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개편과 신설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멍에를 벗어 던지지 못했다.

이승만 정부 때는 1959년 자유당 정권을 비판하던 경향신문 폐간에 앞장섰다. 59년 4월 당시 경향신문 외에도 폐간이나 정간 처분된 일간 신문과 통신은 무려 10여 개에 이른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문화공보부는 철저하게 나팔수 역할을 담당했다. 1975년에는 유신체제의 언론 통제에 맞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의 강제 해직을 주도했다.

1980년 신군부는 언론 통폐합 및 언론기본법 제정, 민주언론인 해직 등 언론 탄압에 앞장섰다. 역대 홍보처의 장(長)들은 정치권 실세가 맡아 언론정책을 좌지우지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문공부의 주요 임무는 그 유명한 ‘보도지침’을 매일 언론에 하달하는 것이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보처가 언론 통제의 중심적 역할을 해 왔다”며 ‘공보처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 집권과 동시에 공보처를 폐지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폐지 1년 3개월 만인 1999년 5월 지금의 국정홍보처를 신설했다. 체계적인 국정홍보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슬쩍 이름을 바꿔 사실상 공보처를 부활시킨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홍보처가 언론 통제에 나섰다가 여론의 반발을 산 사안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독립 부처로 존재할 수 있는 기능이 별로 없는 홍보처는 ‘존재의 이유’를 끊임없이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정권 홍보’나 ‘언론 통제’에 앞장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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