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마다 드리우는 국정원의 그림자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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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0일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는 “국정원이 과거 정치공작에 깊숙이 관여하고 정치사찰을 한 것을 인정하나”는 열린우리당 박명광 의원의 질문에 “부끄럽지만 인정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인정한대로 국정원과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는 대선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선거에 개입해 왔다.

○ 1987년, ‘수지 김’ 사건

이 사건은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가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단순살인사건을 ‘여간첩 사건’으로 몰았던 사건이다.

1987년 1월, 안기부는 수지 김의 남편인 윤태식 씨가 홍콩의 한 아파트에서 부부싸움 도중 수지 김을 목졸라 숨지게 했다는 자백을 받은 뒤에도 윤 씨가 “북한이 조총련계 공작원이자 홍콩 교포인 아내(수지 김)를 통해 나를 납치하려고 했다”는 기자회견을 허용했고, 나아가 윤 씨의 주장을 공식 확인했다.

이는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 등 안기부 지도부가 대선을 앞두고 민주화를 주장하는 학생들을 구속했던 건국대 사태 등으로 수세에 몰리자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윤 씨의 조작된 주장을 묵인한 것이었다.

진실은 14년이 지난 2001년에야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고 윤 씨는 징역 1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국가는 수지 김 유족에게 42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 1992년,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1992년 안기부는 “북한이 적화통일을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이선실 씨를 서울에 보내 남한 내 북한 공작 지도부를 구축하고 남로당 이래 최대 규모의 남한 조선노동당을 결성했다”고 발표했고, 관련자 62명을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했다.

그해 대선에서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 측은 이후 경쟁자인 김대중 후보의 사상을 문제삼으며 정치권 연루설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지난해 8월 국정원 과거사위는 간첩 이 씨와 중부지역당의 실체에 대해서는 사실이었던 것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과거사위는 “안기부가 이 사건을 부풀려 대통령 선거에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 1997년, 오익제 편지 사건 등 북풍 사건

1997년 8월 안기부는 밀입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밀입북하기 전 김대중 대선 후보와 20번 이상 통화한 기록이 있다고 발표했다.

12월에는 오 씨가 김대중 후보에게 평양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북한이 김 후보에게 호의적이란 내용)를 보냈다며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이어 재미교포 윤홍준 씨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김대중 후보가 북한 고위인사와 연계돼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들은 ‘북풍(北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선이 끝난 뒤 검찰은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이 ‘김대중 불가’ 견해에 따라 오익제의 편지를 의도적으로 공표하는 등 북풍 사건을 주도했다”며 권 씨 등 6명을 안기부법 및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안기부가 윤 씨에게 돈을 줘 기자회견을 사주한 사실도 밝혀냈다.

○ 2002년, 불법 도청 사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에도 그치지 않았다.

2002년 11월, 김영일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고위 간부에게 보고되는 도청자료 원본을 입수했다”며 국회의원 24명, 언론사 사장 2명, 기자 8명 등 총 39명이 2002년 3월 통화한 상대방 이름과 통화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는 A4용지 27장 분량의 자료를 공개했다.

당시 국정원은 “증권가에서 만들어진 정보지”라며 “휴대전화는 감청할 수 없다”고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2005년 국정원 ‘미림팀’ 등이 자행한 불법 도·감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 의원 등이 제기한 문건이 국정원에서 불법 감청해 작성한 것임을 밝혀냈다.

국가정보원(옛 안기부)의 과거 대선 개입 사례
연도사건당시 내용최근까지 밝혀진 사실
1987년여간첩 수지 김 사건북한의 공작원인 수지 김이 남편인 윤태식 씨를 납치하려 함.윤 씨가 부부싸움 도중 수지 김을 살해한 것을 은폐하려 했고 안기부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를 묵인.(대법원)
1992년남한 조선노동당 사건북한이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이선실 씨를 남한에 보내 남한 내 북한 공작 지도부를 구축.주축인 중부지역당과 이 씨 등의 실체는 존재. 그러나 안기부가 이 사건을 부풀려 대선에 정략적으로 이용.(국정원 과거사위)
1997년북풍 사건밀입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김대중 대선 후보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과 관련해 한 재미교포가 김 후보와 북한 인사 연계 의혹 제기.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이 의도적으로 정치공작을 했고, 재미교포도 돈을 주고 사주.(검찰)
2002년불법 도청 사건한나라당 지도부가 정치공작을 위한 국정원의 도청 의혹을 제기했으나 국정원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 국정원이 불법 감청을 통해 도청했음.(검찰)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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