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고쳐야” 공무원 지방선거 개입 현정부서 되레 늘어

  • 입력 2007년 6월 1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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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공무원의 선거 중립과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연일 비판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 단임제와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선거법과 같은 제도는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8일 원광대 특강에 이어 같은 주장을 거듭한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의 선거 중립과 대통령 단임제는 한국적 특수 상황이 반영된 것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비판하는 노 대통령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 중립 조항은 3·15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 이후 관권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대통령 단임제는 6월 민주항쟁에 따라 이뤄진 1987년 개헌 때 도입된 것이다.

대통령 단임제 역시 권력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에서 공무원의 선거 중립 취지와 맥이 닿아 있다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대통령 단임제를 연임제로 바꿔야 한다는 견해가 없지 않지만 공무원의 선거 중립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연임제를 채택할 경우, 관권선거가 다시 판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1차 임기 중에는 재선을 겨냥한 인기 정책에 치중한 뒤 재출마 때 공무원을 선거운동에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제기한 이슈의 논리적 타당성을 검증해 본다.》

■정치중립 요구 선거법은 시대착오?

관권개입 잦았던 한국 특수성 반영…핵심은 ‘선거 중립’

노 대통령은 청산해야 할 ‘후진적 정치제도’의 예로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대통령의 정치 중립을 요구하는 선거법을 꼽았다. 청와대는 “선거법은 관권선거 시대의 유물”이라고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선관위가 노 대통령에게 주문한 것은 정치 중립이 아니라 선거에서의 중립이다. 국가공무원법상 대통령을 비롯한 정무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정치 활동이 허용된다.

법조계와 학계는 노 대통령의 주장은 우리나라 선거법의 특수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선거법에 ‘공무원의 중립성’을 못 박은 것은 선거 부정이나 관권선거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우리나라만의 특수성과 뼈저린 경험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

특히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며 정치적 중립성을 ‘의무’가 아닌 ‘권리’로 명시했다. 이는 관권선거 동원에 반대하는 공무원들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그 신분을 헌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조치다. 대통령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에 나설 경우 공무원들이 관권선거운동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차단하기 위해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규정한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는 “대통령의 말처럼 시대가 바뀌었다면 국민적 합의를 통해 헌법이나 법률부터 개정해야지, 법부터 어긴 뒤 ‘나는 옳다’고 하는 건 ‘대통령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선거법이 과거 정부시절에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을 동원해 관권선거를 했던 잘못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며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전국 단위 선거였던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졌던 것이 공무원의 선거 개입이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06년 5·31지방선거 선거사범 단속 결과 정당에 가입하거나, 선거기획에 참여한 공무원 335명이 입건돼 12명이 구속됐다. 이는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입건자인 142명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충청 지역의 한 자치단체에선 공무원이 자치단체장을 돕겠다며 당비를 대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법무부는 5·31지방선거에서 공무원들의 선거 개입이 큰 문제점으로 나타나자 공직선거법의 허점을 손질하는 내용의 개선 의견에 ‘공무원의 당내 경선 과정 불개입 의무’를 제시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5·31지방선거는 공무원에게 정치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시기상조란 생각을 갖게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 자유 보장’ 주장이 전국교직원노조, 전국공무원노조 등 하위직 공무원을 자극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전교조, 전공노 등은 몇 년 동안 정당 가입의 자유 등을 보장해 달라고 촉구해 왔다.

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무현 정부 들어 민노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된 공무원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5년 단임제가 쪽 팔린다?

6월 민주항쟁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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