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보고 탓인가… 조급증 때문인가

  • 입력 2007년 2월 17일 03시 00분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15일(현지 시간) 숙소인 로마 시내 한 호텔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13일 타결된 6자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왼쪽) 등 협상 관련 담당자들을 칭찬하고 있다. 로마=김경제 기자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15일(현지 시간) 숙소인 로마 시내 한 호텔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13일 타결된 6자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왼쪽) 등 협상 관련 담당자들을 칭찬하고 있다. 로마=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이 원하는 것을 다 주더라도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남는 장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2005년 베이징(北京) 북한 핵 6자회담 9·19공동성명이 지난해 북한 핵실험으로 무력화됐던 것과 달리 13일의 6자회담 합의를 보면 미국도 북한도 진정으로 핵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다는 외교안보 라인의 보고를 받았다며 “잔뜩 기대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이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아 치적으로 삼으려는 조급함의 발로이거나 대통령에 대한 보고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남북 관계에 대해 수많은 낙관적 전망과 정책을 내놓았지만 그 전망이 얼마 안 가 잘못으로 판명되고 그 결과 대북 정책도 흔들린 경우가 많았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북 포용을 강조하며 “핵과 미사일이 자위 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했다가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포용정책에 효용성이 있다고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며 물러선 일이 있다.

▽알 수 없는 ‘노선(盧線)’=노 대통령은 13일 북핵 합의 직후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합의 사항을 신속 원만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즉각 시행하라”고 했고, 15일엔 대대적인 대북 지원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의 본질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 조치라는 지적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 인도적 지원, 에너지 지원에 협력하기로 한 것은 북한이 핵실험을 ‘불능화’ 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때 제공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도 대비된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북한 핵실험 직후 “이제 북한이 무엇을 하든지 다 수용하는 식으로는 해나갈 수 없게 됐다”고 한 바 있다. 이번 6자회담 합의는 북핵 문제 해결의 시작에 불과하고 핵무기에 대한 언급도 없다. 북한 핵실험을 둘러싼 상황은 지난해와 달라진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북한판 ‘마셜플랜’을 언급했다. 객관적 상황은 변화가 없는데, 대통령만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세종연구소 송대성 수석연구위원은 “노 대통령은 핵실험 이후 여론에 밀려 이탈했던 대북 포용정책의 궤도로 선회할 수 있는 명분을 위해 6자회담 결과를 최대한으로 평가한 것”이라며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정상회담까지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달라는 대로 다 주면?=노 대통령의 생각처럼 북한이 원하는 요구 사항을 모두 다 들어줄 경우 정부가 져야 할 부담액은 최소 9조4778억 원에서 최대 13조9928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희망경협사업’이란 제목으로 정부가 만든 내부 자료에 따르면 △200만 kW 송전 등 에너지 지원 △개성∼평양 구간 고속도로 개보수, 남포항 시설 현대화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 △농업 임업 수산업 분야 지원 등 전 분야에서 남한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선의’는 자신들이 가진 카드를 세분화해 최대한의 대가를 챙겨 온 북한의 협상전술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6자회담에서 대북 에너지 제공에 대한 균등 분담을 관철시킨 정부가 향후 대북 협상에 임할 때 협상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북한이 핵을 폐기해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고 궁극적으로 평화체제가 정착될 수 있다면 노 대통령의 구상대로 대북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6자회담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까지는 멀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번 동포간담회에서 화해협력 평화 공존의 틀을 갖추지 못한 문명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없다면서 “대한민국은 아무리 돈을 벌어도 이류 국가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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