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선 “이번 대선만은 잘못된 공약 바로잡아야”

  • 입력 2007년 2월 14일 02시 59분


13일 한국경제학회 신임 회장에 취임한 이영선 연세대 교수. 그는 “올해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의 경제 공약 검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재명 기자
13일 한국경제학회 신임 회장에 취임한 이영선 연세대 교수. 그는 “올해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의 경제 공약 검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재명 기자
“노무현 정부는 지난 대선 때 매년 7%의 경제성장을 하겠다고 공약해 놓고 분배 문제도 유난히 강조했습니다. 지금 성적표를 보면 5%가 채 안 되는 저(低)성장이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신임 한국경제학회장인 이영선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13일 서울대 멀티미디어 강의동에서 학회장 취임식을 가졌다. 이어 ‘2007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리셉션이 열린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본보 취재팀과 만난 이 신임 회장은 이 같은 질문을 던진 뒤 그에 대한 대답으로 ‘표를 의식한 무분별한 공약 남발’을 들었다.

“좋은 건 다 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부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목표를 내걸었고 분명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 회장은 대선 후보의 경제 공약 검증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거 대선 때마다 후보들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져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장밋빛 공약들을 쏟아내 결과적으로 국민만 어려움에 빠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에서도 무리한 공약으로 인한 역효과가 있었습니까.

“현 정부의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은 성장도 하겠다고 하면서 균형발전도 하고 분배도 해결하려 한 점입니다. 부동산 정책을 보세요. 국가균형발전 정책 때문에 시중에 돈이 풀렸고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올려 집 없는 서민들만 피해를 봤습니다. 또 나중에 이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잔뜩 규제만 남발하게 됐죠. 이것은 원래 정부가 강조했던 ‘규제 완화’ 방향에도 어긋나는 점입니다.”

이 회장은 현 정부가 이념적으로는 상당 부분 ‘좌’에 가깝지만 이를 실행하는 정책 수단은 ‘좌’와 ‘우’가 어지럽게 섞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비일관적인 정책이 국민의 피해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그는 “성장을 하겠다고 했으면 거기에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정부나 대선 후보들이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민간 경제학자들이 왜 이런 공약 검증을 제대로 안 했습니까.

“과거에는 경제학자들이 정치라 하면 기본적으로 문제 제기를 안 하는 풍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제학자가 아니라 ‘경제기술학자’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었죠. 하지만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또 현실적으로 대선이 우리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어요.”

이 회장은 올해 한국경제학회의 과제를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외환위기 10주년을 맞아 앞으로 한국 경제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느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선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일이다.

1952년 창립된 한국경제학회는 전국적으로 회원이 2000여 명에 이르러 한국에서 최고로 영향력 있는 민간 학회 중 하나로 꼽힌다. 40여 개 학회가 참가해 열린 이날 ‘경제학 공동학술대회’도 이 학회가 2001년부터 주관해 왔다.

―경제 공약 검증 문제는 경제학회 이사회에서 동의할 것으로 보십니까.

“미국에서는 엉터리 공약이 나오면 바로 다음 날 각계에서 비판이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도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선거만은 잘못된 공약 남발을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죠. 오늘 기조발제를 하신 박영철 서울대 초빙교수도 때마침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날 학술대회의 기조연설을 맡았던 박 교수는 “인기 영합적 공약이 이번 대선에서도 반드시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정책 검증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중립적인 공약 평가를 위해 경제학회뿐 아니라 다른 민간학회 등 외부 전문가의 도움도 요청할 생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언론 매체 등을 통해 각 당의 후보나 대표를 직접 초청해 반론의 기회도 주겠다고 했다.

또 그는 “사회적 비용, 예산이 들어가는 문제는 다 경제 부문과 연관돼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사회 분야나 대북 문제에 대한 공약들도 검증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대선주자들의 공약에 대한 평가나 다음 정권에서 추진돼야 할 경제 공약에 대한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앞으로 각 당에서 공식 후보를 선출한 뒤에야 공약 검증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오늘부터는 제가 한쪽으로 치우친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 본다고 말했다.

“미래는 고소득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에 맞게 개개인이 창의력을 개발할 수 있는 사회 여건이 필요하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중국도 위협이 아니라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경제 상황으로 5%의 성장도 나쁘지는 않지만 양극화와 실업, 빈곤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이 원만히 진행돼야 하는데 정부의 규제와 강성 노동조합, 법에 의거하지 않는 집단의 실력행사, 마비된 교육 시스템이 이를 가로막고 있죠.”

그는 외환위기 같은 사태가 한국에 다시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고 했지만 각 분야의 개혁이 잘돼 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요즘은 방향이 틀렸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예컨대 규제 완화를 정부가 외치고 있지만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죠. 오히려 정부는 더 큰 정부로 가고 있고 각종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평준화 위주로 진행되면서 창의적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점이 문제”라며 “대학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 선발을 자유롭게 하도록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현 정부가 남은 1년간 해야 할 일로 ‘안정적인 경제 운용’을 들었다.

이 회장은 “대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쏟아내면 차기 정권에 상당한 부담과 영향을 줄 것”이라며 “한번 저질러 놓은 것을 되돌리기는 어려운 일인 만큼 새 정책을 쏟아내는 것보다 기존의 정책을 제대로 완수했는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부가 마지막으로 꼭 완수해야 할 정책으로는 주저 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꼽았다.

○ 이영선 신임 한국경제학회장

△서울 출생(60세)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메릴랜드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근무(1970∼76년) △국제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1978∼81년) △연세대 교학과장, 통일연구원장, 기획실장, 국제학대학원장 △한국비교경제학회장, 한국경제학회장 △현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주요 저서 ‘한국경제의 구조와 정책’ ‘경제계획론’ ‘북한경제의 현실과 통일과제’ ‘민주주의와 경제정책’ 등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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