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제도 변경안 반발 “軍현실 무시한 정치적 포퓰리즘”

  • 입력 2007년 2월 13일 03시 00분


정부가 최근 군복무기간 단축과 유급지원병제 도입, 대체근무제도의 단계적 폐지 등을 골자로 한 ‘비전 2030 인적자원 활용 전략’을 발표한 데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군 안팎에선 “국방 개혁이 아니라 안보태세의 근간을 허무는 국방 개악(改惡)”이라거나 “야전부대의 현실과 전투력 유지를 도외시한 정치적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불과하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군사력 등을 무시한 채 병역제도 변경을 강행할 경우 병력의 질 저하와 전투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유급지원병제 현실성 없어=국방부는 2014년까지 육해공군 병사의 의무 복무기간이 6개월씩 줄어도 전투 및 기술 분야와 첨단장비를 다루는 병사들을 유급지원병으로 충원하면 전투력과 숙련도 유지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현직 군 관계자들은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현 정부에서 군 수뇌부를 지낸 한 인사는 12일 “3, 4년 전 군 내부에서 유급지원병제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실효성이 낮은 것으로 결론 났다”고 말했다.

군 복무 기피 풍조가 갈수록 확산되는 상황에서 월 100만 원 안팎을 받고 6개월∼1년 반 동안 추가로 복무할 병사를 확보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또 유급지원병과 일반병 간에 위화감과 갈등을 초래해 군내 화합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까지 총 2조6000억 원, 이후로도 매년 4000억 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예산도 유급지원병제 도입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군의 한 관계자는 “유급지원병만 확보하면 감군과 복무기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전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국민에게 잘못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군 숙련도 저하 불가피=육군 수뇌부를 지낸 한 예비역 장성은 “병사들이 개인훈련부터 대부대훈련까지 경험하는 데 1년, 이를 반복 숙달하는 데 1년이 걸리므로 24개월이 군 복무기간의 마지노선”이라며 “복무기간이 18개월로 줄면 야전병력들이 유사시 제대로 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유급지원병 확보에 차질을 빚는다면 전차나 장갑차, 자주포, 다연장로켓 등 육군 핵심전력의 전투태세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계화부대의 지휘관을 지낸 한 예비역 장교는 “전차병의 경우 후반기교육(8주)을 받고 일선부대에 배치된 뒤에도 1년 이상 지나야 일정 수준의 숙련도를 갖출 수 있다”며 “복무기간이 단축된 뒤 유급지원병 충원도 제대로 안되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군 관계자는 “복무기간이 계속 단축되면서 각 군의 핵심장비를 다루는 사병들의 숙련도가 과거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유급지원병제 도입에 앞서 가상훈련장비의 조기 도입을 요구했지만 예산 문제로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2003년 복무기간을 2개월 단축하면서 2004∼2007년 사이에 부사관 2만 명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충원된 부사관은 7000여 명에 불과하다. 공군의 경우 현재까지 당초 목표인원(1500명)의 40% 수준인 600여 명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안보에 정치논리 개입돼선 안 돼=2004년 3월 국방부는 2008년까지 육군을 중심으로 4만 명의 병력을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군의 한 소식통은 “2004년에만 육군 위주로 9000여 명을 줄이다 보니 철통같은 대비태세를 갖춰야 할 최전방사단의 병력까지 감축대상에 포함돼 당시 육군 수뇌부가 강하게 반대했다”며 “전력과 직결되는 주요정책들이 군은 배제된 채 정치적 입김에 좌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가 안보 여건을 외면한 채 병력규모와 복무기간을 다른 나라와 절대 비교하는 실책을 범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전직 고위 야전군지휘관은 “유사시 막대한 병력과 재래 전력을 갖춘 북한군에 대응하려면 첨단무기뿐만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병력이 꼭 필요하다”며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군 수뇌부가 누구보다 이를 잘 알 텐데 왜 침묵하고 있는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안보에 정치논리가 끼어들면 전력 공백과 국가위기가 초래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국민들이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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