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신년연설 내용과 의미

  • 입력 2007년 1월 23일 22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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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23일 신년특별연설은 참여정부 4년간의 정책 실적과 성과를 보고하고, 남은 임기 1년의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전에 배포된 연설 전문에서 노 대통령은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등 국정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각종 정책이 야당과 언론의 거센 비판과 견제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자평과 함께 이를 토대로 임기 마지막까지 미래를 위해 "할 일을 하겠다"는 굴하지 않는 소신을 담아내는데 치중한 느낌이다.

연설 제목을 '참여정부 4년 평가와 21세기 국가발전전략'으로 잡고 연설의 상당 부분을 정책 성과에 대한 설명과 미래 국가발전전략 제시에 할애한 데서 그런 의지가 드러난다.

2005년 선진한국 건설, 2006년 양극화 해소 등 지난해까지의 신년연설이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며 국정의 추진동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면,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는 현안 해결에 눈높이를 맞추고 안정적 국정운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논란이 될 만한 '화두'를 던지지 않았다. 지난해의 경우 양극화 해소와 이를 위한 재원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해 '증세 논란'을 촉발했으나 이번에는 국정기조는 물론이고 개별 현안에 이르기까지 원론적 수준의 입장을 개진하면서 국정과제 마무리를 위한 지지를 호소했다.

여기에는 참여정부 4년의 정책추진 방향이 옳았다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판단과 함께 임기말 미래과제를 대비하는데 천착하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지난 4년의 정책 공과(功過)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도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민생을 비롯해 경제와 사회복지, 외교안보 분야 등에서 거둔 성과가 정치논리에 의해 왜곡 내지 폄하되고 있다면서 야당과 일부 언론을 향해 반박수준을 넘어 불신과 불만까지 표출했다.

민생문제만 하더라도 "참으로 면목이 서지 않는다"며 몸을 낮추면서도 "참여정부의 민생문제는 문민정부 시절에 생긴 것을 물려받은 것"이라며 현정부에 대한 야당의 민생파탄론을 정면 반박했다.

카드채 사태 등 국민의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위기를 무난하게 관리하며 경제 전반에 걸쳐 뚜렷한 성적을 냈는데도 불구하고 "97년 경제를 파탄 낸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무책임하게 경제를 흔드는 바람에 국민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성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인식 수준도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경제성장률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 "경제를 아는 어떤 대통령도 5%를 훌쩍 넘는 성장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라고 반박했고, 쉼없이 반복되는 한미동맹 균열 논란에 대해서는 "현실의 의존보다 심리적 의존이 더 큰 문제"라며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사대주의적 근성을 지적했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현실인식은 국정운영 성과에 따른 또 다른 자신감의 표출로도 읽힌다.

노 대통령은 무엇보다 시장경제, 과학기술, 중소기업, 대외개방 등 경제정책 추진 상황 전반에 대해 "참여정부 경제정책은 잘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연장선에서 "다음 정부는 어떤 후유증도 물려받지 않을 것"이라는 게 노 대통령의 경제전망이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의 향후 1년은 국정기조의 변경 없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할 일을 하는 시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도 이날 연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부동산, 교육 등 경제·사회 분야 외에 한미관계와 남북관계 등 외교안보 분야와 관련해서도 기존의 정책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우선 보수층의 좌파정부 비판을 겨냥해 "작은 정부론은 과거 서구의 여러 나라에 해당하는 이야기이지 한국에는 맞지 않는 이론"이라며 사회투자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한미 FTA가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하는 진보세력에 대해선 "진보개혁 세력이 앞으로 정치적·사회적으로 주도적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개방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며 역사의 대세를 수용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이전과 달리 국정연설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장이나 이슈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날 연설을 앞두고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문제 등 특정 현안과 관련해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제안이 나올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지금 저의 관심은 성공한 대통령이나 역사의 평가가 아니다"며 "남은 기간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이 시대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국가적 과제를 뒤로 넘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남북정상회담 문제에 대해 "6자회담이 어떤 결론이 나기 전에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본다"는 원칙론을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노 대통령은 '더 내고 덜 받기'로 요약되는 국민연금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즉시 개혁이 필요한 제도혁신 과제"라며 그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국민연금 개혁이 끝나야 공무원연금 개혁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공직사회의 심각한 동요를 야기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연금 개혁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던 야당과의 연정 역시 "너무 시대를 앞선 성급한 제안이었다"며 "다음 시대의 과제로 넘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정치 현안인 열린우리당의 분당 및 통합신당 논란에 대해선 "지역주의의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재확인, 부정적인 쪽에 무게를 실었다.

노 대통령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임기 중에 해야 할 일을 원만하게 마무리짓고 후임자가 더 나은 환경에서 소신있게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정치권을 비롯한 국민이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이처럼 대국민 호소 대상을 실현가능한 과제로 국한한 것은 임기말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염두에 둔 측면도 있지만, 이보다는 향후 국정을 노 대통령의 지론인 '선택과 집중'의 원리로 운영해 나갈 것임을 반증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이 "필요한 개혁은 제때에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 대표적 과제로 4년 연임제로의 개헌을 예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 대통령은 이밖에 저출산·고령화 등에 대비한 국가 중장기 재정전략인 '비전 2030' 추진을 비롯해 전시작전권 이양, 사법개혁, 방송통신 융합, 4대 보험 징수통합 등을 임기 내 해결이 가능한 과제라고 규정하고 초당적 협조를 요청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올해 신년연설은 당대의 평가에 구속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옳다고 믿는 길을 계속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해 보인다.

특히 연설 말미에 "성공한 대통령에 매달리지 않고 남은 기간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에서 소신에 찬 '마이웨이'의 의지가 함축돼 있다는 분석이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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